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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5-03 11:35 조회1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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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보, 그 뿌리를 찾아서
동창회보편집실
 
이 글은 동창회보의 뿌리를 찾아보고 그 변화과정을 기록하여 상록의 전통과 추억을 동문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 동창회설립70주년을 기념하고자 기획한 것이다. 농업생명과학대학 동창회는 서울대학교 내에서는 최초의 단과대학 동창회로서 1948년에 설립되었다. 공과대학의 동창회가 1951년, 의과대학, 사범대학, 상과대학 동창회가 1956년, 법과대학이 1957년에 창립되었던 것에 비하면 동창회 설립시기가 빠르다. 우리의 자랑거리인 동창회보 역시 1978년에 창간되었는데 이 역시 서울대학교 내에서는 최초로 여겨진다. 우리 동창회보가 창간되기 이전에는 동창회 소식이 대학의 소식지에 소개되었으므로 동창회보의 발전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편의상 동창회보 창립 이전을 2단계로 나누고 그 이후를 4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1) 최초 소식지 : 교지 ‘상록’(1950~1960)
우리 모교와 동창회를 통틀어 최초의 소식지는 모교에서 1950년부터 1960년까지 발행한 교지‘상록’이다. 이 당시에는 학생들은 ‘농대신문’을 자체적으로 발행하였고 대학에서는 2년마다 교지를 발행하였다. 최초의 교지 ‘상록’의 창간호에는 초대학장인 조백현 학장의 권두언과 문교부장관, 농림부장관의 축사를 비롯하여 중요연구기술원장, 대구농대학장 등의 축사가 실려 있어 당시 ‘상록’의 발행은 의미가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교지 ‘常綠’ 권두언(卷頭言)
本大學 護國團誌를 이름하여 常綠이라 하였다.
日政36년 동안에 저들은 모든 學園안에서 이름과 글과 말까지 빼앗었으나 西屯의 變하지 않는 푸른 마음은 빼앗지 못하였다.
눈앞에 小利를 버리고 겨레의 大義를 위하여 어떠한 犧牲도 돌보지 않았다. 거듭하는 獄中의 辛苦도 鐵窓의 죽음도 달가이 여겼다.
鐵같은 團結과 一貫한 鬪爭의 西屯傳統을 아는이는 누구인들 壯ㅎ다 않으랴!
解放後 昏亂의 波動속에도 卽時로 秩序를 바로 잡고 建設一路로 前進하고 있음은 同窓들의 뜨거운 赤誠(적성)과 護國諸君의 眞摯(진지)한 努力에 이바지하는 바 크다 아니하지 못 할 것이다.
硏究에서 스포오쓰에서 우리 大學의 이름이 날로 드높아 가고 있으며 年年世世 學門을 나서는 常綠의 多數한 젊은 情熱들이 學術, 實業, 敎育, 行政 그 밖의 모든 部門에서 眞理探究와 國家의 發展을 爲하여 꾸준히 活動하고 있음은 어찌 우리 學園만의 기쁨뿐이랴.
이제 비로소 우리 글로 우리 뜻으로 常綠 첫號의 發刊을 보게 되니 지난날을 回想하고 感慨 그대로 無量이다.
願컨대 東寮(동료)의 귀한 傳統이 힘있게 살아 날로 隆盛(융성)하여 감을 기원하여 마지 않는다.
學長 趙 伯 顯
 
農科大學校歌
작사 李秉岐(이병기),
작곡 玄濟明(현제명)
곱고도 기름진 三千里江山
옛부터 隆盛한 農業의 나라
華山과 西湖를 左右에 두고
드높이 속아난 위리의 學園
 
偉大한 崇高한 理想을 품고
鄕土로 돌아가 거름이 되자
벌건한 뫼들이 검푸레지고
야위든 마소는 살이오른다
 
돌오는 그때를 아니어기며
무진한 天物을 거두어쓰고
들판의 꽃처럼 純潔한겨레
永遠한 樂土가 이곳아니냐
권두언에서 조백현 학장은 일제강점기에서도 굽히지 않았던 동료(東寮)의 기개를 이어받아 국가의 동량이 되자하였다. 창간호에는 ‘곱고도 기름진 삼천리강산~~~드높이 솟아난 우리의 학원’이란 農科大學校歌(농과대학교가)도 실려 있으며 창간을 기념하는 ‘상록’ 이라는 시도 실려 있다. 이 창간호에는 당시 발간에 관여하였던 선생님들의 역사적 소명의식이 글을 통해 요소요소에 드러나 있어 읽는 제자나 동문들에게 꼭 그리 하여야한다는 무언의 책무를 다짐하게 하는 것 같다. 이로써 상록의 아들, 딸들은 대를 이어 동료의 전통을 이어야 했는 것은 아니었을까.
 
2) 학생소식통합 교지 ‘상록’ (1960.4~1978.9)
학생들이 발행하던 ‘농대신문’이 1960년에 폐간됨에 따라 학생소식까지 포함한 농대를 대표하는 통합 소식지로 상록학보사가 발행하는 ‘상록’이 재탄생하여 1960년 4월 ‘상록’1호부터 1993년 봄 101호까지 33년간 발행되었다. 1978년 9월 동창회보가 처음 만들어지기까지 동창회의 독자적인 소식지는 없었으며 ‘상록’ 소식지의 일부로 게재되었다. 동창회 초기의 기록이 부족하여 확신할 수는 없으나 동창회 연혁을 살펴보아도 1948년부터 1976년 제2대 이창구회장이 취임하기까지 임원개선과 해외 동창회지부 창립 외에는 동창
회의 특별한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 한편 1966년에 수원농림전문학교(농림학교)를 졸업한 일본인 동문들이 농림학교설립 60주년을 기념하여 ‘수원농전’ 동창회보를 만들었고 한국인 동창을 수소문하여 명단을 동창회보에 게재하였다. 1976년 이창구 제2대 동창회장이 취임하고 그 해 농학70주년 기념행사가 모교에서 있었고 당시 일본 동창들이 농학7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 이듬해 1977년 일본 동창들이 만든 동창회보12호(소화52년)가 우리 동창회에 전달이 되어졌는데 그 일부가 현재 농학도서관에 ‘수원농전’ 동창회보로 보관되어 있다. 동창회 연혁에 의하면 일본인 동창들은 1878년10월까지 3회에 걸쳐 모교를 단체 방문하였다.
 
3) 동창회보 창간(1978.9~1993.5, 동창회보 1호~24호)
동창회보의 필요성을 느낀 이창구 동창회장은 동창회보 발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으며 퇴임을 앞둔 1978년 9월 각고의 노력 끝에 ‘동창회보 제1호’를 발간하였다.
동창회보 발간사
이학장님을 비롯하여 학내이사진 여러분의 눈부신 노력의 결과로서 회보의 발간을 보게 된데 대하여 심심한 사의를 올리며 경하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고농시대에는 연보 또는 계보로 발가되어 오던 것이 8.15해방과 더불어 그 자취를 감추어진 것이 유감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동문들의 동정파악 학내외의 새 소식정보 등 모두 이회보를 통하여서만 이룩되는 것이다. -중략-
76년도에 행하였던 모교개학70주년행사의 후문도 많이 들어오고 있으나 이와같은 사실도 상호연락이 부족한 소이라 하겠다. 인간이 모여서 무슨 일을 해나가려면 경비지출이 큰 문제가 부수되기 마련인데 우리나라는 최근 경제의 고도성장으로 100억불수출고지를 점령하고 말았다. -중략-
각계각층에서 국가사회의 번영을 위하여 활약하고 계신 동문여러분께서는 공사간 다망하신중 대단황송하오나 이 회보를 많이 활용하여 주시와 앞날의 발전에 협조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중략- 여러분의 건투를 비는 바이다.
동창회장 이창구
 
 
제3대 이양호 회장은 동창회 재정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1979년에 연회비제도를 도입하고 1986년에는 종신회비제도를 도입하였다. 이후 동창회보 발간은 15년간 지속되었으나 동창회보 발간비용을 지원할 재정이 확보되지 못하였다. 동문들의 회비납부실적이 저조하고 후원금 협찬도 어려워 마침내 1993년 5월에 동창회보 제24호를 마지막으로 독자적인 동창회보 발간은 중단되었다.
4) 농업생명과학대학소식지와 통합발간(1993.12~2004.4)
1992년 3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은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통합교지 ‘상록’은 1993년 4월 101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됨에 따라 새로운 대학명칭과 교육 및 연구활동을 홍보하는 소식지가 필요하였다. ‘농업생명과학대학소식지’는 농생대 홍보소식지로서 1993년 12월 1일에 창간되었다. 마침 재정문제로 1993년 5월에 제24호 동창회보를 마지막으로 동창회보 발간이 중단됨에 따라 동창회 소식은 농생대 소식지를 통하여 동문들에게 전달되었다. 농업생명과학대학 소식지는 대학의 기획실에서 편집하였는데 발행을 거듭하면서 동창회 소식은 크게 줄어들었다.
제6대 윤근환 회장은 동창회보의 복간을 추진하였으나 동창회보 발간비용을 부담할 능력을 확보하는 것과 동창회보 기획 및 발간을 주도할 능력을 독자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았다. 마침 2004년 한 출판업체로부터 동창회보를 신문형태로 연 2회 이상 발간하면 광고를 업체가 수주하고 발간·발송은 물론 동창회에 일정액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동창 회장은 동창회보 재발간을 총무이사 이중용 교수에게 지시하였고 이 교수는 故권용웅 교수, 故김성수 교수, 故원중식 서예가(농학63??)의 도움을 받아 타블로이드판으로 디자인하고 원고를 모집하여 동창회보를 속간하게 되었다. 농업생명과학대학소식지는 20호부터 대학이 독자적으로 발간하다가 2007년 10월에 ‘Cals News Letter’가 창간되면서 중단되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농업과학생명대학소식지.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2854pixel, 세로 3728pixel
5) 신문형 동창회보(2004.12~2008.5, 동창회보 44~57호)
속간된 동창회보의 호수는 44호로 결정되었는데 그 근거는 동창회보가 24호로 중단되었고 이후 ‘농업생명과학대학소식지’로 19호를 발행하였으므로 이를 동창회보로 간주하여 정한 것이다. 신문형 동창회보는 4면으로서 지면이 넉넉하였으므로 동창회와 동문소식은 물론, 동문탐방과 칼럼, 동문문학작품수록과 회비납부내역 외에 동문기업의 광고도 게재되었다. 2005년 새해 아침에 동문들은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사진을 1면에 실은 속간 동창회보와 함께 동창회비 지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늘어난 지면으로 기사를 기획하고 원고를 확보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제44호를 기획하고 추진한 이 교수는 안식년을 떠나고 당시 동창회 직원들은 능력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윤근환 회장은 손해일(잠사67)동문을 초빙하여 동창회보 편집을 부탁하였다. 신문형 동창회보가 속간되자 동문들의 반응은 뜨거웠으나 광고를 수주하는 동창회보 발행업체의 도를 넘어선 광고수주활동은 동문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다. 또한 동문주소록이 틀린 경우가 많아 반송되는 동창회보가 상당량에 이르러 지로를 이용한 동창회비 증대효과는 예상보다 크지 못하였다. 동문들의 원성이 높아지면서 신문형 동창회보는 2008년 5월 제 57호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6) 잡지형 동창회보(2008.9~, 동창회보 58호~)
제6대 한인규 동창회장은 신문형 동창회보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고품격화를 추진하였으며 2008년 9월에 최초의 잡지형 동창회보 58호를 발행하였다. 새로운 동창회보는 고품질 용지에 인쇄되었고 유명 시사주간지처럼 자랑스러운 동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표지인물로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동문탐방, 칼럼, 특집기사, 동문투고 작품, 모교소식, 동창회소식, 동문동정, 회비납부 등과 함께 고품질의 사진을 제공함으로서 볼거리 읽을거리가 풍성하고 다채롭게 편성되었다. 동창회보의 대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이면에는 손해일 동문의 탁월한 기획능력과 편집위원들의 노고와 함께 동창회직원의 수준 변화를 빼놓을 수 없다. 잡지형 동창회보와 동시에 동창회보 편집위원회가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손해일(잠사67), 故이용환(농교육63) 동문이 위원장으로 수고하였고 현재는 최윤재(축산73) 동문이 편집위원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우리 동창회보의 역사를 돌이켜보았다. 우리 동창회보는 세계적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높은 품격의 기사와 작품을 싣고 있다. 고품격 동창회보를 유지하는 것은 동창회 재정규모로 보면 놀라운 일이다. 1년에 세 차례 발행되는데 한 회당 인쇄와 발송 비용만 2,000만원에 달하므로 동창회 예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훌륭한 동창회보가 계속 발간되는 비밀은 역대 동창회장의 개인주머니가 화수분역할을 하였음을 동문들에게 밝히는 바이다. 동창회보가 동문과 모교에 끼치는 무형의 가치가 큼을 알기에 역대 동창회장들은 동창회보 발행을 동창회장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동창회는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동문들의 정성어린 회비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동창회는 대학과 동문의 소식을 전하고 추억을 나누기 위해 어려움 속에서도 정성을 기울여 동창회보를 발간하고 있다. 편집위원회에서 기획되고 동창회 사무국에서 원고를 취합하고 출판부 교정을 거쳐 인쇄되고 발송되는데 적은 인원으로 제작되다 보니 작고 큰 실수가 많이 발생한다. 혹시 실수를 발견하였다면 씩 웃으며 ‘동창회 사무국이 요즘 많이 바쁘구먼’하고 정정하여 주는 넓은 혜량을 구하는 바이다.
동창회보는 상록문화재단과 함께 가장 큰 동창회 70년의 유산이자 업적이다. 동창회 70년과 더불어 앞으로 70년 더 발행될 장수의 동창회보를 기원하며, 동창회와 동창회보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과 지원을 기대한다.
동창회보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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