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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뵙고싶었습니다 | 그린장학회 연결고리로 모임환갑넘긴 60단위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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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2-26 11:47 조회1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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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장학회 연결고리로 모임환갑 넘긴 60단 주역들
 
동창회 70주년 기념 대담회
대담진행-이혜숙(혜), 대담 참가 53학번동문- 김영진(영), 한상기(한), 김종천(종), 정지현(정)
 
혜:2018년은 동창회 창립70주년을 맞아 항상 동창회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모든 것에 솔선수범하여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53학번 동문들을 동창회보 ‘만나 뵙고 싶습니다.’에 초청하였습니다. 이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영; 동창회가 점점 활성화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매년 장학금지급액도 커지고 행사 참석자들의 수도 늘었으며 회의진행방식 등도 많이 발전했고 상록대상의 수상자들도 다방면에서 발굴하여 인물의 면면도 다양해져서 동문들의 자부심을 한층 고취시켰고 동문기업탐방 등도 장소와 형식 등에서 다채로워진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지난 동창회 60주년 때 동창회 명부를 발간하면서 일본 동문들의 명단을 빼서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아픈 역사가 원인이었지만 정치적인 상황을 떠나 같이 수학을 한 동문들임에는 분명해서지요. 이번 70년사에서는 개선이 되었으면 합니다.
 
혜: 동창회의 상징과도 같은 상록의 날, 새해인사회 등이 지금과 같이 정기행사화한 것은 53학번의 동창회에 대한 남다른 애정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
: 우리가 53년 6.25전쟁 종식 전에 입학하여 57년에 졸업을 하였는데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졸업앨범도 만들지 못했어요. 졸업 후 30년째 되던 해에 모두가 여유가 좀 있을 무렵 수원캠퍼스에서 은사님들도 초청하여 감사선물도 드리고 학교에는 행사에 사용하도록 천막 몇 동을 기증하고 우리들도 그 때서야 졸업앨범을 만들어 가지고 전기스탠드도 기념품으로 나눠 가졌습니다. 그 이후로 이것이 동창회 상록의 날 행사의 기본형식으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새해인사회도 53학번부터 졸업50주년을 기념하면서 시작된 것 같군요.
 
혜; 학창시절에 대한 재미난 기억이나 잊혀 지지 않는 일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 6.25 전쟁통에 입학을 한지라 학교 건물도 손상이 많이 되어서 3~7반까지 합반 수업을 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4개 반이 큰 교실에서 시험을 치는데 안재준 교수 혼자서 감독을 하였습니다. 의자위에 올라서 전체 감독을 하시는데 그 와중에 귀청이 터질 것 같이 굉음을 내며 제트기가 지나갔지요. 그 엄청난 소리에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떨어지셨는데 웃음을 참고 시험을 치르느라 한참 애먹은 기억이 나는군요. 당시는 전쟁직후라 제트기가 한 번 지나가면 너무 시끄러워 5분 정도는 수업진행을 못했어요. 또 한 번은 4학년 졸업반 때, 당시 대학원에 갈려면 대학전체 영어와 독어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지원이 가능한데 전 단과대학이 같은 문제로 출제되다보니 우리 농대생들은 그 시험에 미달이 되어 자체 인원을 타대학에 자꾸 뺏기는 겁니다. 그래서 교수님들이 이것을 방지하려고 대학원 지원생들을 대상으로 방과후에 특강을 열어 직접 지도를 하셨어요. 독어는 방선희선생님이, 영어는 이춘녕선생님이 가르치셨는데 그 덕분에 그 해 대학원 지원자 모두 합격을 하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그 6명 중에 한상기 박사와 임승만 박사는 세계적인 석학이, 3명은 대학 학장과 교수가 되었지요. 그리고 그런 교수님들의 열정이 53학번들로 하여금 학교와 정부행정기관, 산업계 모든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키워주신 것 같습니다.
 
: 대학원 합격 후 당시 부학장대우를 받으며 농대의 교육 기본틀을 만들다시피한 지영린 선생님께서 전공을 뭘 할 건가 물으셔서 유전육종을 하겠다하니 자기 제자가 되라며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잡초학을 권하셨습니다. 당신이 미국유학 중 잡초학이 상당히 중요한 것을 알게 되셨나봅니다. 그러고는 바로 실험실열쇠를 제게 맡기셨지요. 지영린 선생님께서는 절대로 남의 험담을 하지 않고 칭찬을 많이 하는 훌륭한 인품을 가지셨는데 좋은 학생을 알아보는 선구안도 같이 가지셨습니다. 저도 이 후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선생님의 교육방법을 많이 따라 했습니다.
 
: 3학년 2학기 되던 55년 9월에 아홉 명이 모여 뭔가 의미있게 살아보자고 ‘그린’클럽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한박사가 ‘GREEN’이름을 제안했는데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수십 년이 지나 이‘그린’이란 말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더군요. 이 클럽의 강령은 세 가지인데, 첫째, 참되게 살자, 둘째, 서로 친목화합하자, 셋째, 영원히 우리 농업을 위해 이바지하자였습니다. 이 강령을 바탕으로 졸업을 하고 나서 어디에 있던 노력을 하며 살았고 이것이 연결고리가 되어 회비도 내고 하다가 10년 째 되던 1968년에 좀 더 의미 있는 목표를 찾자며 모교에 장학금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 그린장학금은 우리 대학에서 주어지는 교외장학금 1호였습니다. 현재도 1년에 한 명의 등록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9인 중 이제 3명은 타계를 하였고 1명은 병환중이고 또 1명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이 그린장학금의 향후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떠나도 이 그린장학금의 의미가 끊이지 않고 후대에 이어지길 원해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뭔지 심도있게 논의 하고 있습니다.
 
혜: 60단이 이렇게 단합된 모습으로 60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모임이 지속된 것은 김영진동문과 정지현동문의 공이 큽니다. 항상 봉사정진으로 앞장서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연락하고 모임이 활성화되도록 매 번 좋은 강연거리를 마련하니 즐겁지 않을 수가 있나요. 김영진박사가 고문에도 능하고 농업사 쪽으로도 전문가여서 항상 좋은 강의로 모임이 지루하지 않게 해주지요.
 
: 특히 김 박사는 재학시절에도, 졸업 후에도 항상 회장이 아닌 총무를 맡아 연락을 하고 회원들의 애경사를 챙기면서 모임의 구심적인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어요. 풍부한 행정경험으로 모임이 잘되도록 하지요. 또 정지현 대표는 5~6년 전부터 그린장학회의 회장을 맡아 5~6000만원이던 기금을 자신이 더 보태어 1억1천만 원으로 늘려 놓았습니다.
영: 우리 동기들의 단합된 힘의 핵심은 ‘그린장학회’가 모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연결고리가 되어 회원들이 60년이 넘도록 불화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들으면 좀 우습겠지만 회의 때 마다 외치는 세 가지 강령은 우리 모임의 취지를 살리고 마음을 다잡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혜: 60여 년간 모임을 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그린장학금을 68년부터 학교에 내기 시작 했는데 60년대 말에 이은웅 선생님을 비롯한 모교 농학과 교수들이 고맙다고 우리 회원 전체를 부부동반으로 당시 서울 한정식으로 유명한 ‘옛집’에 초청하여 저녁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유달영 교수께서 직접 우리 모두에게 휘호를 써서 주셨지요. 저의 경우는 ‘지심여수(持心如水)라는 글귀를 주셨습니다. 그 글귀처럼 살고자 하였으나 쉽지는 않았어요.
한: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카드를 써서 은사님들께 보내곤 했는데 한번은 유달영선생님께 카드를 보내면서 선생님께 배운 채소학은 다 잊었는데 강의 중에 들은 인생에 대한 말씀은 살수록 더 진리로 마음에 와 닿는다고 글을 썼더니 선생님께서 나를 달리보시곤 좋아하셨습니다.
 
: 한상기 박사는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알아주는 세계적인 학자입니다. 한 번 가보지도 않은 코넬대학과 조지아대학의 명예교수로도 위촉되셨지요. 유달영 선생님께서 나중에 건국대학의 상허재단 이사장을 하실 때 한 박사에게 상허대상을 수여하였습니다. 한 박사는 나이지리아에서 아프리카 주식인 카사바를 연구하여 개량된 카사바 보급으로 아프리카의 식량난을 해결하였지요. 한 박사가 대학을 졸업할 때 우리한테 자신을 ‘멘델다시’라고 불러 달라했어요. 그 때부터 우리는 그가 유전육종에 일생을 걸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1970년에 영국 캠버리지대학과 나이지리아 열대농업연구소, 두 곳에서 초청하였는데 결국은 나이지리아로 갔지요. 모두가 말렸습니다. 당시 나이지리아는 100만 명이 죽은 비아프라내전이 막 종식된 시점이었지요. 하지만 제 연구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했습니다. 길은 처음 가는 사람이 만드는 거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고 결국 해냈지요. 저의 연구결과로 아프리카인들이 식량난에서 벗어난 것을 보면 뿌듯합니다. 우리 후배들에게도 남 따라 가지 말고 남들이 가지 않은 미지의 길에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훨씬 많은 기회와 보람이 거기에 있습니다. 두려워말고 도전하길 권합니다.
 
혜:1953년은 막 전쟁이 끝난 직후였을 것 같습니다. 당시 공부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 당시는 전쟁직후라 누구나 할 것없이 경제적으로 어려웠습니다. 학비조달도 어려웠고 기숙사가 전쟁 통에 소실되어 모두가 자취를 했으니 숙소문제도 컸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아르바이트로 연탄공장에서 일도 하고 농업시험장에서 일도 했습니다. 2학년 때 이정행 선생님이 참깨유전에 대한 박사논문연구를 하실 적에 제가 도왔는데 참깨 꽃이 오밤중부터 새벽까지가 피는 지라 실험을 위해 밤새 수술을 떼고 암술만 남겨 파라핀으로 봉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고 낮에 수업을 들으니 말 다했지요. 연탄일하다 돈이 모이면 서대문 헌책방에 가서 책을 무게단위로 사서 공부를 하던 참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종: 귀청를 뚫는 비행기 소리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당시 조백현 선생님께서 공군대장을 찾아가서 해결을 부탁하니 학교를 옮기는 게 더 빠른 해결책이라 했다더군요. 그 비행기 소리 해결에 50년이 걸렸군요. 다들 경제적으로 힘들어 가정교사도 하고 농장관리 아르바이트도 하며 어렵게 공부했습니다. 저의 경우는 책을 등사기에 찍기 전 필사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어요.
 
: 교복도 비싸서 살 수가 없었어요. 겨우 교모 하나만 장만했지요. 군복에 검은 물을 들여서 교복으로 입곤 했는데 조성지 선생님께서 명색이 대학생이니 역전노동자와 분간이 되게 단정히 입어라고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물들인 군복이라도 자주 빨아 입으려 했지요. 그렇게 어렵게 공부를 한 경험이 우리 동기들이 졸업 후 각 계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한; 제가 70년에 나이지리아에 가게 된 결심을 한 것도 당시 우리 대학, 우리나라의 연구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나이지리아의 열대농업연구소는 비록 아프리카였지만 연구환경이 우리보다 좋았어요. 우리의 경우 실험시설은 물론이고 계산기 하나도 변변한 게 없었습니다. 어렵게 연구결과가 나와도 발표할 여건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요?
: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란 책을 여러 번 정독했습니다. 어리석은 이는 좋은 인연이 와도 모르고 보통사람은 온 줄은 아는데 잘 쓸 줄을 모르고 현명한 이는 좋은 인연을 키워 더 큰 인연을 만든다했어요. 그래서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참고 양보하며 모든 인연을 좋은 인연으로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혜: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 나이가 먹으면 친구가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는 60년이 넘게 만나도 할 얘기가 많아요. 후배들도 학창시절 때부터 졸업 후에도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만남의 연결고리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린’이 그 연결고리였습니다.
 
: 선택의 기로에서 보람 있는 일과 뜻있는 일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남이 가지 않는 길에 도전하여 고난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는 용기를 가졌으면 합니다.
 
: 우리 시대는 아날로그식 농업을 배웠고 가르쳤습니다. 4차 산업시대에 우리 농업이 도태되지 않도록 AI등 IT를 접목한 스마트한 농업을 발전시켜나갔으면 합니다.
 
혜: 동문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 우리는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가 되었습니다. 농학과 농업의 지속된 발전을 위해 동창회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으면 합니다.
 
혜: 오늘 첫눈을 맞으며 관악으로 오셔서 대담회를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배님들의 모교에 대한 열정이 오늘의 동창회가 있게 한 것 같습니다. 농학과 농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우리 동문들이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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