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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과농업 | 동창회 70주년 특별칼럼 '동창회 70주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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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2-26 11:20 조회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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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 70주년을 돌아보며
제7대 동창회장 한인규(축산52)
1. 시작하는 말
올해 2018년 4월 1일에 우리 농생대동창회는 창립 70주년을 맞이한다. 필자는 먼저 우리 동창회가 창립70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이다. 파란 많았던 우리 동창회의 지난 70년을 되돌아 보면서 필자는 먼저 이 70년을 태동기, 성장기, 개화기 등 세단계로 나누어 주요 업무추진실적을 살펴보고 끝으로 70년 이후를 결실기로 규정하면서 동창회의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2. 태동기(1~2대 동창회장 시절, 30년 6개월간)
우리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동창회는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모교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1948년 4월 1일에 창립되었다. 초대회장으로는 당시 모교의 학장이셨던 조백현 교수가 추대되었다. 구전되어 온 말에 의하면 그 때 동창회는 일본에 거주하는 동문들의 모교방문 행사를 지원하는 것 외에는 별 다른 활동이 없었다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당시에 모교에는 농학과, 임학과, 축산학과 등 3개학과가 있었으나 학생정원이 많지 않으니 자연히 동창회 회원의 수도 얼마 되지 않고 그 때만 해도 취직이 잘되던 시절이라 모교와 동창회는 글자 그대로 태평성세를 누렸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태동기 30 년간의 기록이나 자료를 찾아 볼 수가 없어서 그 부분의 역사를 살필 길이 없다. 조백현 초대회장께서 28년간 회장을 재임한 후 1976년 3월 31일에 퇴임하시고 그 날 농공학과 교수이셨던 이창구박사가 제2대 회장으로 피선되어 1978년 9월 30일까지 2년 6개월 간 재임하셨다. 회칙에 있는 대로 회장 임기3년을 준수하되 대학외부에 있는 졸업생 중 동창회장감을 물색할 때 까지만 회장직을 수행하겠다고 전제하셨다고 한다. 다행스러웠던 일은 이창구회장께서는 2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회장직을 수행했으나 임기를 마치는 달에는 동창회보를 창간하셨다는 사실이다(1978년 9월 1일). 우리는 이창구 회장께 축하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동창회의 태동기는 너무 길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회보창간 외에는 별로 활동실적도 수행한 주요 업무도 없는데 말이다.
 
3. 성장기(3~6대 회장시절, 27년 11개월간)
이창구회장의 약속대로 우리 동창회는 마침내 유명 외부 졸업생을 동창회장으로 모셔오는 일에 성공하였다. 농학과 졸업생으로 그 때 내무부차관으로 재임 중이시던 이양호동문을 1978년 10월 1일에 제3대 회장으로 추대하게 되었다. 그는 1986년 3월 14일까지 7년 5개월 간 우리 동창회장으로 재임하셨다.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이양호 회장은 나라 일에 너무 바빠서 재임 중 겨우 3권의 동창회보를 발간하였을 뿐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모 원로 회원의 술회에 따르면 어떤 경우에는 동창회 행사를 소집해 놓고 막상 회장인 그가 급한 일이 있어 불참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도 신년교례회와 같은 행사는 매년 꼬박꼬박 수행하셨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나 싶다. 동창회가 좀 더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라는 우려가 들끓고 있을 때 임학과 교수이셨던 심종섭박사가 1986년 3월 15일에 제4대 동창회장으로 피선되었다. 그는 1995년 5월 12일 상록의 날까지 9년 2개월간 재임하셨다. 심종섭회장께서는 동창회와 모교의 발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또한 동창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셨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첫째, 동창회보를 총 20권을 발행하셨고 둘째, 동창회의 나약한 재정수입을 증가하기 위하여 종신회비제도(1986년)를 도입하고 또한 부회장, 이사 등에 임원회비를 징수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도 하였다(1990). 심종섭회장 당시 이런 일도 있었다. 서울시립농대는 개교 50주년 기념행사로 비록 벽돌로 건립한 것이지만 기념탑을 세웠는데 8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많은 인재를 배출한 우리 농생대는 상록탑 하나 건립하지 못하고 뭐하는거냐는 자성의 소리가 높았다. 심지어 모교 교수회의에서까지 이런 문제를 논의하고 상록탑건립을 추진하였다. 이에 심종섭회장께서는 모교학장과 함께 충청, 영남, 호남 지방을 가리지 않고 모든 동창회원을 상대로 상록탑건축기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순회여행을 하셨다. 심종섭회장만큼 열심히 지방에 있는 동문들을 많이 찾아 다니신 분은 없을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모교 개교 80주년(1986년)을 3년 지난 1989년 4월 22일에 수원캠퍼스 후문부근에 있는 양지바른 곳에서 상록탑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웠던 일은 이미 개교 80주년은 3년이나 지났는가 하면 상록탑건축기금 모금실적이 부진하여 심종섭회장께서는 끝내 상록탑을 건립하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정말 이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또 있을까. 그 때 상록탑건축기금모금 총액은 1,312명으로부터 1억1천만 원을 모금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금은 나중에 동창회 발전기금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불렀고 시중은행에 예금하여 기금을 늘려 2009년에 설립한 동창회 장학재단인 서울대학교 상록문화재단의 기본재산으로 투입되었음을 밝혀둔다(발전기금충액 2억1천만원).
성장기의 우리 동창회는 몇 가지 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첫째, 회비제도의 다양화를 기하고 집행부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여전히 동창회 운영비 조달이 어려웠다. 둘째,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회보발간 사업의 지속이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장임기의 3년 단임제를 주장하시던 제4대 박진환 회장(1995.5.13.~1998.5.8.)이 취임하면서 독자적으로 발행하던 동창회보 제25호를 끝으로 농업생명과학대학소식지와 합병하여 공동으로 발간하게 되었다(1995.5.1.). 그러다가 제6대 윤근환회장(1998.5.9.~2006.9.8.)의 임기 말엽에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하여 신문형태의 동창회보 제44호(2004.12.30.)를 속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회보는 연 4회, 5000부씩 외주의 형태로 발행하였다. 즉 박진환, 윤근환회장 때 농업생명과학대학소식지로 학교와 공동으로 19권, 단독 회보를 7권 발간한 다음 회보업무를 제7대 한인규회장에게 넘겼다. 동창회 전성기때에는 그래도 동창회 행사 즉, 신년교례회와 상록의 날 행사 등은 충실하게 추진되었으나 회원들의 참석률이 저조하여(50명내외) 집행부 임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때는 동창회 사무실에 농생대 교수 한 분이 기획이사직을 맡아 동창회 회무를 감독하였다. 윤근환 회장의 큰 공로의 하나는 2003년에 ‘자랑스러운 상록인대상’제도를 도입 실시하였다는 것이다. 정말 잘 하신 일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4.개화기(7~10대 회장시절, 11년8개월간)
먼저 개화기의 동창회보의 발행실적을 살펴보면 제7대 한인규회장(2006.9.8.~2010.5.15.)이 제51호부터 57호까지 7권의 신문형 동창회보를, 2008년 9월1일부터 잡지형으로 전환하여 제58호부터 63호까지 6권을 발행하였다. 그 후 제8대 정윤환회장(2010.5.15.~2013.5.15.), 제9대 이현수회장(2013.5.15.~2016.5.15.), 제10대 류관희 회장이 창립70주년까지(2016.5.15.~2018.5.1.) 소식전달능력이 신문형보다 3~4배 높은 잡지형 동창회보만 23권을 발행기일이나 편집체계의 변동없이 순조롭게 발행하였다. 동창회보 발간에 관한한 우리 동창회는 크게 성공하였다고 단언할 수 있다. 현재 동창회보는 연 3회, 10,000부 이상을 발행, 배부하고 있다. 개화기에 속하는 회장 4명이 쌓아 올린 동창회에서의 공적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동창회보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였다. 둘째, 들쭉날쭉하던 회장의 임기는 3년 단임으로 굳힘으로써 임원의 연령을 젊게 내려가게 하고 따라서 동창회를 젊게 하는 일에 공헌하였다. 셋째, 동창회 창립6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이 행사를 위하여 동창회 창립60주년 기념문집 전3권을 발행한 것도 큰 업적이라 할 것이다. 넷째, 모교 개교 100주년(실제102주년)과 동창회 창립60주년을 기념하여 상록탑건립과 상록인 명예의 전당을 개설하였다. 이로써 상처 입은 상록인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에 일조를 하였다. 다섯째, 모교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업무용 대형버스를 기증함으로써 평창캠퍼스와 수원농장으로의 이동과 연결을 원활하게 하였다. 여섯째, 모교재학생 후배들에게 장학금 전달할 기회와 액수를 늘리고 장학업무를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2009년 11월 20일에 ‘서울대학교상록문화재단’을 설립하였다. 다행히 장학금규모도 늘어서 2017년에는 동창회 관련 장학기관, 즉 상록문화재단, 목운문화재단, 일성장학금 등으로 비공식집계에 따르면 총 300명의 학생에게 약 6억 여 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일곱째, 장학금모금활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동창회 내에 장학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여덟째, 그동안 여기저기로 흩어져 있던 동창회 관련 자료 및 각종기록을 한데 모아 동창회 역사자료의 기본을 확립하였다. 아홉째, 잃어버렸던 동창회 발전기금(2억1천만원)의 예금증서를 찾는 일을 포기하고 농협은행에 가서 이 증서의 분실신고를 하고 재발급을 받았다. 열째, 동창회 창립 70주년 기념행사를 착실하게 준비 중에 있다. 열 한번째, 동창회 각종자료와 기록의 전산화를 이룩하여 동창회업무의 선진화를 이룩하였다. 이 기간에 속하는 전기 네 명의 동창회장은 동창회의 발전을 위하여 획기적인 노력을 기울였음을 강조하는 바이다. 한 가지 더 첨언하고 싶은 것은 상록문화재단을 창립하고 초대회장으로 수고하던 한인규회장은 재단의 보다 효율적인 운영을 위하여 재단이사장을 동창회장이 겸무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여 현재 그렇게 운영이 성공적으로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우리 동창회의 태동기, 성장기 및 개화기 등으로 이루어진 우리 동창회 70년의 역사를 표로서 요약하면 아래 표1과 같다.
 
5. 결실기(제 10대회장의 잔여임기와 그 이후, 항구적으로)
결실기라고 함은 제10대 류관희 회장의 잔여임기 즉, 2019년 5월 상록의 날까지를 시발점으로 하여 그 이후에 선출된 회장과 그들의 임기를 말함이다. 지금부터는 개화기에 이룩한 일들을 존속 내지 발전적으로 수행하면 좋을 것이다. 회장의 임기는 앞으로도 3년 단임제를 계속 고수하여야 할 것이다. 동창회보는 앞으로도 잡지형으로 발행하되 연3회(1월, 5월, 9월)에 1만부 이상을 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편집체계와 내용은 지금과 같이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동창회 운영비의 안정적 조달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사안인 만큼 앞으로 선출될 회장은 회비증수를 보다 적극적으로 집행해야 할 것으로 본다. 회비징수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모든 집행부가 노력하였으나 필요한 동창회 예산을 확보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가능하면 상록문화재단의 연간 장학금 지급규모를 10억 원 이상으로 확충함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동안 우리 모교는 영국대학평가기관Qs의 발표에 의하면 세계500개 대학 중 랭킹 38위에 올라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모교의 발전인가. 하지만 여기서 20위 또는 10위로 발돋움을 하려면 글로벌 리더를 양성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연간 10명 이상의 외국인학생을 입학시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연간 2억원 가량의 장학금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다. 모교의 전•현직 학장단과 우리 동창회의 전•현직 회장이 TF를 구성하여 빠른 시일 안에 외국인 유학생장학금을 조성하여 이 사업에 착수하기를 바란다. 이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상록문화재단을 위시하여 모교의 교육연구재단과 학내에 있는 장학재단이 모두 나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6.마치는 말
지난날 우리 동창회는 휴면상태에 빠진 일도 있고,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적으로 범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농생대동창회는 서울대학교의 단과대학 동창회 중에서는 단연 A급으로 분류되고 있다. 참으로 흐뭇한 일이다. 그동안 고생한 역대 회장을 비롯한 동창선후배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지금 우리 동창회원들은 각종 행사에 2~300여 명이 참여하고 있고 모교 재학생을 위한 장학금 출연도 비교적 잘 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모교에서 지난 40년간 교수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필자는 재학생들에게 모교를 사랑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모교의 발전을 위해서 출연하는 일에 힘쓸 것을 강조하는 인성교육을 더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이 아쉽고 후회스럽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모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 농업생명과학대학이 될 것이 확실하다. 우리 동창생 모두는 모교의 발전을 위해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를 보태는 성숙한 졸업생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동창회와 모교는 무궁하게 발전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찬란한 동창회 70년의 태양이 솟아오르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자.
 
[표1]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동창회 70년의 주요 업적 요약표
구분
역대
회장명(재임연수)
주요 업무 추진 실적
재임기간
태동기(1~2대)
30년 6개월
1대
조백현(28년0월)
동창회창립(1948.4.1.)
신년교례회 제도 도입
동창회보 창간(1978.9.1.)
 
1948.4.1.~1976.3.31.
2대
이창구(2년6개월)
1976.3.31.~1978.9.30
성장기(3~6대)
(27년 11개월)
3대
이양호(7년5개월)
동창회보속간 총49호
농생대소식지와 동창회보 공동발행 총19호
일반연회비제 도입(1979), 임원회비제도입(1990), 종신회비제도입(1986)
상록탑(개교80주년기념)기공식(198.4.22)
상록탑건축기금 및 발전기금 모금차 전국지역동문회방문
동창회보를 농생대소식지로부터 분리발간(제44, 2004)
자랑스러운상록인대상 제도 신설(2003년상록의 날)
상록탑 및 발전기금 모금실적(1억1천만원)
*은행 예치하여 2억1천만원의 기금 조성
**상기 기금으로 서울대학교상록문화재단 설립시 기본재산으로 사용(2009년)
1978.10.1.~1986.3.14
4대
심종섭(9년2개월)
1986.3.15.~1995.5.12.
5대
박진환(3년0월)
1995.5.13.~1998.5.8.
6대
윤근환(8년4개월)
1998.5.9.~2006.9.8.
개화기(7~10대)
(11년 8개월)
7대
한인규(3년6개월)
창립60주년 기념행사(2008.4.1.)
상록탑 건축 및 상록인 명예의 전당 개설
고급업무용 버스 모교에 기증
서울대학교상록문화재단 설립(2009.11.20.) 및 장학제도 활성화
동창회 각종 자료 및 기록정리(각종 회비납부실적)
매년 재학생 총 300여 명에게 총 6억 원가량 장학금지급
장학위원회 설치하여 장학금 모금활성화
동창회 회원데이터 정리 및 각종 자료 전산화
분실했던 상록탑발전기금증서(2억1천만원)재발급
신문형동창회보를 잡지형으로 전환(48호2008.9.1.)하고 현재까지 총28호 발행
⑪회장임기를 3년 단임으로 실행
⑫동창회 70주년 기념행사 및 역사기념관 준비 중
2006.9.8.~2010.5.15
8대
정윤환(3년0월)
2010.5.15.~2013.5.11
9대
이현수(3년 0월)
2013.5.11.~2016.5.21
10대
류관희(1년 10개월)
2016.5.21.~20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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