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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 바른 역사기록은 미래세대에 대한 당대의 의무이자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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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8-31 09:31 조회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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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역사기록은 미래세대에 대한 당대의 의무이자 사명
지적박물관 관장 이진호(임학52)
 
지적박물관을 운영하고 계신데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적이란 토지의 권리과 의무 등에 관한 기록으로 땅의 호적과 같은 것으로 측량기술이 기본이 되지요. 이 지적박물관은 제가 1999년에 40여 년간 측량관서 행정분야와 현장에서 측량을, 강단에서 지적사를 강의하면서 수집한 자료를 기본으로 충북 제천시 금성면에 폐교된 초등학교자리에 개관을 하여 지금까지 18년간을 운영을 해오고 있습니다. 박물관 역할과 함께 학생들 체험학습프로그램운영, 지역주민의 문화활동 공간역할, 학술잡지발간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4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1전시실은 측량사진, 관계서적 등이, 제2전시실은 측량기기, 제3전시실은 특별전시실로 향토지와 백년사 등이, 제4전시실에는 측량의 결과물인 삼각망도, 각종지적도면, 지도 등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이 지적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일한 특색 있는 전문박물관입니다. 이따금 지적관련 일본학자들이 와서는 수집된 자료들을 보고 달라하기도 하고 부럽다고도 말합니다. 일본조차 지적에 관한 저술된 책이 한 권 뿐인데 우리는 저 자신이 쓴 지적 책이 10권이 되고 후학들이 쓴 책도 2~3권이 됩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박물관인 동시에 가장 관람객이 적은 박물관이기도 합니다. 홈페이지를 보고 지적관련 대학 등에서 단체로 오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지적도뿐만 아니라 옛날 특히 일제 강점기의 자료들을 많이 모으시고 번역도 하신 것 같습니다. 특별한 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몇 권을 소개 하자면 한 권은 ‘토지임야조사에 관한 고전적 일어논문번역집’입니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먼저 근대화가 되고 우리를 침략하여 강점하였기에 일본을 추월하기위해서는 일본을 먼저 알아야한다고 생각해서 토지 임야 지적 관련 고전적 일어논문을 번역하기 시작하여 번역집만 10권이 되었습니다. 지적을 근거로 모든 산업과 문화가 발전하기 때문에 지적학자가 아니어도 한국사를 위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학술지에 우리나라 사람이 실은 논문이 여러 편인데 우리나라에는 소개가 되지 않아서 ‘국토적보공사’나 관련학회에 여러 번 중요하니 번역을 하라고 요청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아서 직접 해제를 쓰고 번역집을 30부를 출판하였습니다. 또 한 권은 ‘구한말일어학교의 연구’ 번역본입니다. 원본은 큐슈대학의 이나바쯔기오 교수가 구한말 일본어학교(남북한32개교)에 대한 연혁을 정리한 책인데 우리나라 교육사 연구자들은 이에 대한 연구가 없었지요. 그래서 저자에게 허락을 받은 후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적계통이 아니래도 번역 중 가장 힘들고 보람이 있었던 책은 ‘삼각측량작업결료보고’란 책입니다. 토지조사시에 기본적으로 측정을 해야되는 삼각점을 어떻게 작업하는지의 과정과 이론 등을 자세히 적은 책인데 이 책을 일본 우각협회에 보존 중인 것을 발견하여 후대에 남겨야겠다고 생각하여 자비로 번역하여 출판을 하였습니다. 측량 교과서에는 없는 지적관련연혁, 종사자명, 구서삼각점내용 등이 들어있습니다. 일면 측량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을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하였는가를 기록하여 두자 이는 이 세대의 의무요 사명이다’ 란 어록(語錄)의 뜻은?
우리나라는 기록에 강한 나라라지만 그것은 왕조에 관한 부분에 한해서이고 그 외 부분은 많이 취약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적어도 제가 전문인 지적부분에서는 우리 선배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지를 기록하여 후대에 전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지적분야 종사자들의 기술개발, 교육 등의 이력에 관한 책을 정리하여 ‘지적인열전’을 발행하였습니다. 비록 한정판으로 몇 권 되지 않게 발행하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후대에 전해져서 선배에 대한 인식과 역사인식도 제고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적박물관 체험학습 프로그램 소개 부탁드립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도배우기’, ‘지도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천지역의 옛 지도를 보여주고 현대지도를 만들라면 학생들이 제각기 창의적으로 만들어보고 즐거워합니다. 또 지역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활동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바램이 있다면 ‘한일측량교류 국제세미나’를 개최하고 싶습니다.
 
2007년부터 역사 바로 쓰기 운동에 나서고 계시는데 이와 관련하여 말씀 부탁드립니다.
고종황제께서 조칙으로 구한말까지 전국에 52개교의 공립소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일제통감부가 설치된 후 ‘보통학교’로 개명하면서 1800년대에 설립한 것을 약 10년을 절사하여 1907년 개교한 것처럼 고친거지요. 일제는 우리말 말살뿐만 아니라 우리 정신의 산실인 학교역사도 말살한 겁니다. 게다가 많은 구한말에 설립된 사립학교들을 공립보통학교화 하는 과정에서 기왕에 사립학교 설립인가 연도를 무시하고 새로이 인가하여 마치 그 학교의 개교일로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조선제학교일람’, ‘조선교육대관’ 등에 기재했습니다. 그리고 말살된 개교일이 각급 학교의 제행사의 기준이 되어 기념행사를 그리고 설립일로 하였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광복이후에도 여전히 잘못된 기준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바로잡고자 해당학교와 교육청 나아가 교육부에도 개별적으로 구두나 공문을 보내어 시정이 되도록 고지를 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답변도 없고 시정 되는 바도 없습니다. 서로 자기 관할이 아니라는 답변만 오고 이첩만 시키는군요. 최근에는 청와대에도 이에 관한 민원을 넣었는데 이에 대한 것은 아직 화답이 없고 독도가 우리 땅이란 근거제시는 의미파악이 안되는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첩하였고 또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육부’로 이첩하였으며 교육부에서는 동서문답의 답변을 해왔습니다. 심히 안타가운 일입니다.
독도의 경우 일본이 자국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는 유일한 근거가 시마네현 고시40호(1905년)입니다. 독도가 시마네현의 이끼현소속이다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일본 민법에 ‘무주의 소유는 국고로 한다’고 하였으니 일개 현 고시로써 일본소유라고 명시한 것을 근거로 제시함은 당연히 무효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일본 국유지는 등기도 되어 있지않고 도면도 없습니다.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공부(公簿)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부동산의 소유여부는 등기여부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도는 임야대장에도 등재 되어 있고 국유지로 분명하게 등기도 되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바로 잡고 싶은 것은 ‘농협’의 역사입니다. 1907년 전라도 광주에 ‘금융조합’을 제일 먼저 설립하였고 해방 후 1957년 ‘농협’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농협협동조합’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합의 역사 기산점을 1957년으로 하여 그 이전의 역사를 묻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에 의한 역사 말살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없앤겁니다. 이것에 관한 민원도 ‘금융감독원’으로 이첩된 후 ‘농협중앙회’로 이첩되었는데 농협의 답변은 여전히 1957년을 기산점으로 한다 하였습니다. 제가 안타갑게 생각하는 것은 일본에 의해서든, 우리 스스로에 의해서든 역사는 절사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칭이 바뀌었다고 변경 전의 역사를 없애면 안됩니다. 만일 명칭이 바뀔 때마다 지나간 것의 발자취를 없애거나 기록하지 않는다면 그 앞의 기록들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역사가 없어지는 것이죠. 역사란 치욕의 역사든 영광의 역사든 귀중한 자료들입니다.
 
저서 중에 일본과 관련된 책들이 있습니다. 우리 역사도 아니고 우리에겐 잊고 싶은 아픈 역사인데 굳이 ‘일본인 인명사전’ 등을 제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일본인 인명사전’에는 4600명의 일본인의 대한 이력입니다. 일본인 인명사전인 동시에 일본인들의 우리나라 침략의 역정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그 중 동경제대 출신이 716명이나 됩니다. 일제는 엘리트를 동원하여 우리를 지배한 것이지요. 이 책을 통해 왜 우리는 침략을 당했는지를 우리 스스로 되돌아보고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일본을 뛰어넘기 위해서라도 아프지만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에 대한 기록을 꼭 살펴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픈 역사의 기록을 꼭 남겨두기 위해 적지만 30부를 발행하였습니다.
지적유물과 수집한 많은 자료들을 토대로 우리나라가 세계제일의 지적강국이 되기를 소원한다고 하셨는데 ‘세계제일의 지적강국’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는?
지적이라는 것은 건설, 산업, 문화의 기초가 되는 자료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정확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튼튼한 국가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정밀한 지적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가 우리를 침탈 할 때도 제일 먼저 한 작업의 하나입니다.
 
소장자료 중에 상명산법필사본이 있던데 이 책이 어떤 책인지요?
이 책은 수학측량에 관한 책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군의 아들 부루시대부터 자를 만들어 전답을 측량하였습니다. 측량의 역사가 오래되었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토지를 측량하기 위해서 수학, 도형 등 측량학이 발전하였습니다. 전답측량은 모든 학문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지요.
 
삶의 철학이 있다면?
일본의 종교철학자인 우치무라간조가 말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란 말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현신규박사께서도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죠. 저 역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습니다.
 
박물관이 향후 어떻게 발전되었으면 하시는지요?
지금 제 나이가 적지가 않습니다. 저의 소신으로 운영을 해오고 있지만 많은 무관심으로 폐관을 고려하기도 하였지요.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동문들의 참여와 협조가 절실합니다. 역사적인 소명감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 박물관이 그 역할과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후학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학문연구를 열심히 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너무 연구의 방향이 앞으로만 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뒤도 돌아보고 정리 기록하는 부분의 연구가 더 많이 진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국가교육행정기관 또는 사회역사 연구가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국가 담당 공무원들은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회역사연구가들에게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으면 합니다. 역사는 모든 학문의 기초입니다. 역사는 제쳐놓고 너무 앞으로만 가려고 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초가 없이는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신채호선생님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이가 없군요.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우리 모두가 역사에서 배우고 깨달아 발전된 미래를 맞이했으면 합니다.
 
이진호 동문은 40여년간의 지적분야의 근무 경험을 토대로 1999년 제천에 ‘지적박물관’을 세워 운영하며 지적분야의 옛 자료 수집 연구 정리 및 향토사 등을 연구하고 관계논문발표 및 저서를 발행하고 있다.
 
*지적박물관 http://www.forjijeok.com
*참조논문:서울대학교농업생명과학대학의 창립시기와 연혁에 대한고찰---서울대학교농업생명과학대학동창회->회원동정->공지에서 보실수있음
 
 
 
독도의 영유권은 등기가 말한다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유일한 근거는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오키도사(隱岐島司)의 소관으로 정한다’이다. 그런데 이사태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원본이 소실되었다고 하니(시마네현 고시 제40호의 실체의 재발견, 2013.12.6. 학술대회) 그 신빙성이 약하다. 그보다는 그 고시 자체가 불법임이 규명되었다.
 
일본 민법 제239호
<무주의 선점>
무주의 동산은 소유의 의사로 이를 점유함으로 인하여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무주의 부동산은 국고의 소유로 한다.
국고는 국유라는 뜻으로 지방청인 시마네현 지사 소관으로 정할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민법 제252조
<무주물의 귀속>
무주물의 부동산은 국유로 한다.)
 
1항 소유의 의사로 점유하면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하였는데 한국이 오래전부터 점유하여 소유하여 왔으니
당연히 소유권을 취득하였는데 왜 <무단점유>라고 하는가?
 
근현대의 부동산의 득실변경은 등기해야만 효력이 있다.
 
부동산에 관한 법률행위로 인한 물권의 득실변경은 등기하여야만 그 효력이 생긴다.(한국민법 제186조) 그러나 일본 민법이나 부동산등기법에는 이러한 사항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사실상 등기해야만 취득 등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죽도를 등기도 하지 않고 지적도도 없다. 2005년 3월22일 참의원 법무위원회에서 야마우치(山內)위원과 정무참고인 데라우치(寺內)민사국장의 질의에서 죽도의 등기와 지적도는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1961년 4월 1일 독도를 임야대장과 임야도에 등재하였고, 2005년 4월 25일부터 13일간 대한지적공사에서 GPS측량을 하여 101필(187,554㎡)을 토지대장과 지적도에 등록하였다.(울릉도 재무과 지적계) 서도(20임야), 동도(30임야)를 비롯한 도서의 등기는 1968년 3월 13일 해운항만청(현 해양수산부) 소관으로 울릉도 등기소에 보존등기를 하였다.(등기부등본), 이렇게 한국은 지적공부와 등기서류를 성실히 갖추어 소유권을 행사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다.
일본은 교과서에 죽도를 일본영토라고 기술한다고 하고 아베는 국제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하는데 근거가 없거나 불법인 것은 아는지 궁금하다. 위와 같은 사실을 일본에 통고하고 한국의 교과서에는 이러한 사실을 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鶴村 이진오
(상기의 글은 이진호동문이 금년 청와대에 민원으로 밝힌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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