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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나방과 함께한 험난한 외길인생, 현미경 속에 진정한 과학자의 사명감을 구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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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8-30 09:37 조회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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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과 함께한 험난한 외길인생, 현미경 속에 진정한 과학자의 사명감을 구현하다
前 한림원 총괄부원장 박 규 택(농생물63)
평생을 곤충학연구에 매진하셨는데 특히 곤충분류학을 전공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농촌진흥청 곤충과에 근무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분류학을 하게 된 것은 농진청에서 1970년 당시 UNDP원조사업의 일환으로 ‘식물보호강화사업’이 추진되고 있었는데 그때 전문가로 파견되어왔던 코넬대학의 곤충학교수가 해충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분류전문가’ 양성이 절대 필요하다는 주장에 첫 감명을 받게 되었고, 동시에 미국에는 주립대학마다 곤충학과가 있으나 국내 대학에는 곤충학과가 하나도 없는 실정이라 장래를 위해 도전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지요. 특히 곤충분류학 분야는 실로 불모지나 진배없고, 남들이 꺼려하는 학문분야이기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먼저 분류전문가로서의 길을 결심하면서 1974년 영국으로 1년 간의 전문과정 연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곤충분류학 훈련을 받으면서 19세기 말에 많은 유럽의 곤충학자들이 멀리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그리고 우리나라에까지 와서 곤충채집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영국에 가기 전에는 우리나라 곤충들에 대한 초기 조사가 일제강점기 동안 주로 일본인들이 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연수기간 동안 접해 본 책들에서 1886년에 이미 영국학자가 원산만으로 배를 타고 들어와 우리나라 곤충들을 채집하고 그 결과물들로 10여권의 책들이 발간된 것을 보면서 외국인이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에까지 들어와 곤충들을 조사하였는데 지금부터라도 우리 힘으로 누군가가 해야 할 것이아닌가?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라는 자괴감마져 느끼게 되었지요.. 수많은 국내산 식물들의 학명에는 Nakai 등 일본인들의 이름이 수없이 붙여진 것을 보면서 곤충에도 한국인의 이름들이 붙여지는 것이 학자의 소임임을 절감하고 우리나라 곤충들이 우리 손으로 조사되고 명명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게 되었습니다.
 
곤충분야에서 600여 종의 신종을 발견하셨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동물의 이름(학명)들은 1758년 스웨덴의 생물학자 린네(Linnaeus)가 제창한 동물이명법에 의한 규약에 따라 명명을 하게 되는데 형태적 특징, 지명이나 사물의 이름등을 따라 종명을 붙이게 됩니다. 제가 만든 학명 중에는 우리말 어원 (hannara, onnuri, senara, deahania, sanmaru등), 지명 (seoulensis, jejuensis, jiriensis 등)을 따라 붙여진 이름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종들을 처음 발견하여 한국인의 성과 함께 붙여진 학명들은 생물학사에 영원히 남게 됨으로 우리말 어원으로 붙여진 학명들은 우리의 문화와 우리나라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이는 또한 자연문화 창달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심사자들의 공감대를 얻어 지난 2015년 삼일문화상이 나 같은 생물학자에게 어렵사리 주어진 것이라 여겨집니다. 또한 나비박사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온 석주명 선생의 성함을 딴 diemseoki란 종명과 백운하 교수의 이름을 딴 Woonpaikia란 속명도 생물학사에 영원히 남을 한국인의 귀한 발자취가 될 것입니다. 더우기 내 한사람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학명 parki, kyutekparki등이 15종의 곤충이름에 붙여진 것도 세계적인 기록임에 틀림없습니다.
 
농학과 관련된 곤충 중 가장 이로운 곤충과 해로운 곤충은 무엇인지요?
곤충학의 발전사를 보면 농경이 시작된 태고적 부터 인간은 누에나 꿀벌처럼 인간 생활에 유익함을 주는 곤충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차츰 농경이 발전되면서 농작물에 해를 주는 해충들에 대해서도 관심의 영역을 넓혀 왔습니다. 대부분의 곤충은 식물을 먹이로 먹이식물과 함께 공진화하므로 경제작물의 대상에 따라 그를 먹고 사는 곤충들은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새로운 해충이 되지요. 뿐만 아니라 요즘 농산물의 교역증가에 따라 외국으로부터 수입되는 갖가지 농산물에 부착되어 유입하는 해충들도 많아졌습니다. 농업이 지속되는 한 이들 새로운 곤충과의 전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침입곤충에 따른 경제적 피해 규모는 때론 구제역이나 AI로 인한 피해 이상이지만 국가적인 경각심이나 대책마련과 일반인들의 관심밖에 놓여져 있는 것이 전문가로서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1930년대 솔잎혹파리가 국내로 유입된 이래로 지금까지 계속 쏟아 부은 방제비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입니다. 그 외 1960년대의 흰불나방 유입으로 받은 산림피해와 금세기 들어와서 꽃매미, 소나무 재선충, 가루깍지벌레 등등 이런 해충들로 인한 산림이나 농작물의 경제적 피해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매년 엄청난 돈의 방제비가 들지만 정작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 찾고 있지요. 왜 일까요? 해충들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숫자는 물론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 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1970년에 해충전문가로 왔던 미국 코넬대 교수의 말, ‘효율적 해충방제를 위해서는 반드시 분류학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을 다시 한번 상기케 합니다.
 
수많은 종류의 곤충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은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닐 것 같습니다.
눈에 띄지 않은 작은 미물들을 채집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100만종이 넘는 그들 중의 하나가 무슨 종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이것이 분류전문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더군다나 어떤 것이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신종인가를 찾아내려면 그와 비슷한 종이나 같은 종이 세계 어느 곳에 있는지를 알아야 함으로 전세계 분포종에 대한 폭넓은 정보의 축적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유능한 분류학자가 되려면 오랜 연구경험이 필수입니다만 국내의 연구 풍토로는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고된 일에 평생을 걸어야 되는 이 어렵고 험난한 길을 누가 가려고 하겠습니까? 외국의 유명 분류학자들도 원로급이 되어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원로가 되기도 전에 이미 일을 접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문가로의 진입 문턱에서 다들 손을 놓아버리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무슨 종인지를 감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연구대상이 채집물이라 기존의 채집물이 없으면 직접 찾아 나서야 하는 것도 이 분야의 어려움입니다. 재료확보가 안되면 연구를 할 수 없기에 저의 경우에도 대만, 베트남 등 해외로 채집을 수없이 다녔습니다.
대학 퇴임이 멀지않았던 2000년에 들어 와서야 전 세계 여러 곳 (미국 Smithsonian연구소, 카네기 Museum, 독일, 영국, 덴마크, 스위스 등)에서 그들의 귀한 수집 자료들을 내게 보내 분류의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이들 의뢰받은 자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내 책상위에는 100년 전에 채집된 Africa산 나방표본 한 박스가 놓여져 있습니다. 한 세기가 지나도 해결되지 않은 귀한 표본들이 결국 내게로 와서 그들의 이름이 붙여져 학계에 발표되어지기를 기다리는 거죠. 세계적으로 알려진 한사람의 분류학자로서 인정받는 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분류학자들이 더 큰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과 아쉬움이 함께 느껴지기도 합니다. 국내 교단을 은퇴한 지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계 곳곳에서 의뢰되어지는 숙제들에 둘러 싸여 마냥 한가해 질 수 없는 형편인지라 은퇴 후의 여유롭고 단란한 가정을 기대했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subfamily표지.pn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19pixel, 세로 729pixel
 
던 가족들의 의아한 원망의 눈길을 감내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미래의 주요 식량원으로서 곤충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동의보감에도 106종의 곤충이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한의사도 잘 모르고 있지요. 많은 식물들은 약재로 활용, 개발되어 왔지만 곤충들이 관심밖에 놓여져 왔던 가장 큰 이유는 곤충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고, 실험재료로 공급받기 어려운데 있었다고 봅니다. 곤충은 식물에 비해 너무 종수가 많고 정확하게 형체감별이 어려우며 또한 사육 및 대량공급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량사육기술 개발이 많이 이루어져 있어 수요만 창출 된다면 공장생산화 및 농업화가 쉽게 이루어 질수 있는 새로운 산업이 될 것입니다. 저는 곤충이 주요한 생물자원임을 재임시부터 계속 강조해 왔고, 2001년에 이미 곤충 교과서로 “자원곤충학(아카데미)”을 출간하여 대학교재로 사용, 곤충의 활용성에 그 관심을 유도하려 시도하였지요. 같은 해에 벤처회사로 “(주)킨섹트 (K-insect)"를 창업하여 곤충의 대량사육 기술개발과 함께 미래식량자원으로의 활용에 그 선도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경험과 기본지식이 충분치 못해 투자에 따른 이익 창출이 어려워 일찍 손을 땟으나 지금은 몇몇 제자들의 힘으로 한층 발전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1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이제 곤충의 활용을 위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업화가 가능한 대상 곤충으로는 대량사육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종이면 모든 곤충이 그 대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메뚜기를 구워서 먹는 것처럼 곤충 그 자체를 먹는 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곤충체를 분말화하여 빵이나 에너지바 등에 첨가하는 첨가물 등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면 곤충 부산물의 일종인 프로폴리스가 모든 화장품과 껌, 기호식품 등에 미량으로 첨가되듯이 모든 빵이나 과자 제품에 고단백질 소스로 곤충이 첨가되거나 양어나 가축사료 첨가물로 사용되어 진다면 곤충산업이 각광받는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곤충이 아닌 곤충을 이용하여 부가가치가 큰 산업원료로 개발한다면 그 경쟁력이 충분해 지지요.
 
가장 큰 연구성과는 무엇인지요?
현재까지 국내산 곤충 120여종, 외국산 480여종등 600종이 넘는 신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기록은 현존하는 전 세계 생물분류학자 중 최고 한두 사람에 속하는 기록이 될 것입니다. 또한 신종 (new species)의 기재 발표뿐 아니라 20여개의 신속(new genus)과 한 아과(new subfamily)을 설정, 발표하여 이들 그룹의 분류체계를 새로이 확립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구성과나 국제적 활동, 그리고 그 동안 한림원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제 6대 한림원 총괄부원장에 임명된 것은 개인의 성취를 떠나 상대적으로 학술분야에 취약했던 농업인, 농생대인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얼마간이나 지속적으로 학술논문의 발표와 신종의 기재발표가 지금처럼 이어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열심히 내 연구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곤충에 대한 일반인의 선입견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장 성가신 곤충의 하나인 파리를 예로 들면 그들 중엔 다른 곤충(해충)에 기생하여 발생을 억제시켜주는 인간들에게는 유익한 종들도 있으며 감자 잎을 갉아먹는 해충인 무당벌레들 중에도 진딧물을 억제시키는 천적 무당벌레도 많습니다. 100만종이 넘는 곤충 중에 진정한 해충은 5% 미만에 불과하고 나머지 종들은 직접 간접으로 인간생활에 오히려 유익한 것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물자원으로 충분히 개발 활용 될 수가 있습니다.
 
향후 연구를 통하여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2007년에 미국 Florida대학의 초청제의를 받고 조기 명퇴를 한 후 그 대학 연구실에서 5년 여 동안 연구를 지속하였고 이 시기에 주요 논문들도 많이 출간되어 세계적인 분류전문가로서의 입지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낸 논문이 330여 편인데 이 중 100편 이상, 그리고 주요한 논문들이 대부분 은퇴이후에 이룬 연구결과 입니다.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할 때에는 연구 외에 신경을 써야 할 게 많았지만 은퇴 이후에는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가 있으니 훨씬 그 성과가 컸습니다. 그래서 후학들에게 퇴임 후에도 지속적으로 국제적 연구활동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선례를 남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곤충학을 입문한 이래 지난 40여 년간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에 한 평생을 맡기며 곤충분류학의 외길을 걸어오기 까지는 남다른 무한한 인내가 필요했을 겁니다. 이젠 미소나방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전문가 그룹에 속하게 됨으로서 유명 외국기관들로부터 자신들의 힘으로 분류가 불가능한 재료들은 최종적으로 나에게 의뢰가 되어오는 실정입니다. 분류학자로서 맡은 책임이 갈수록 무거워짐을 느끼면서 의뢰받은 이 숙제물들을 해결하려면 때론 밤잠을 설치면서 해야 하지만 정작 어느 곳에서도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앞으로 그 동안 제가 한 일들이나 연구대상 그룹을 총 정리하여 후학들이 전 세계 종에 대한 정보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참고자료로 출간하려 합니다. 그 첫 단계로 “The subfamily Crocanthinae of the world" 제 1집을 작년에 출간하였고, 제 2집은 2-3년 내에 출간 할 예정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세기에 가장 많은 신종을 발표한 생물학자로 이름이 남겨질 수 있는 한국인이 되도록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예술가나 문학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일의 성취를 위해 힘을 쏟고 있는 예를 흔히 봅니다. 그런데 왜 우리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정년이 멀다하고 자기 일을 마감하려 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물론 우리의 현실이 연구를 계속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동안 학자로서 쌓은 전문적인 지식들이 사장되는 것은 개인을 떠나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다행히 외국대학에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기회가 온 탓으로 은퇴 후에도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었지만 많은 분들이 은퇴 후에도 자기연구를 지속하거나 공헌 할 수 있도록 연구풍토가 점차 개선되어 지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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