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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 그리고 상록의 아들 | 응답하라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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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4-20 10:43 조회5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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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1967
최주섭(67농학과, 동화작가)
 
이야기 들어가며
대학 입학 50주년을 맞이하여 서둔 벌 이야기를 써보려니, 기억이 나는 듯 마는 듯하다. 책장 속 깊은 곳에 먼지가 뽀얀 대학 1971년 졸업앨범을 찾았다. 겉표지를 넘기니 유달영 작사, 조성지 작곡의 교가 ‘상록의 아들’이 펼쳐져 있다. ‘창공에 날개 펴는...’으로 시작되는 교가는 후렴 ‘새 역사를 바라고 깃을 다듬는 자유의 젊은 날개 상록의 아들’로 끝난다. 다음 쪽은 한심석 총장과 표현구 학장님의 근엄하신 사진이다. 표 학장님으로부터 농학과 3학년 때 채소학 강의를 들었다. 교수님의 전공은 ‘무 바람들이 연구’이다. 무는 바람들이 현상이 있는데 이것은 뿌리부의 조직이 성숙, 노화하여 즙액의 성분이 소비되어 속이 비는 것이다. 바람 든 무는 깍두기 재료로 부적합하다. 표 학장님은 ᆞ240 여명의 신입생 앞에서 명쾌한 훈시를 하셨다. “ᆞ제군, 속이 꽉 찬 사람으로 살게!”
 
신입생은 6개 반, 기숙사 생활.
전국의 인재 240여명이 입학했다. 1학년 때는 전공 구분 없이 6개 반으로 나누어 교양과목을 들었다. 교양과목 수강에 적응되기 전부터 학과 선배, 고교동창회, 서클, 향우회 등 환영회와 신고식으로 낮 밤 구분 없이 속을 막걸리로 꽉 채우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신입생들이 상록사(여학생은 녹원사)에 입소했다. 한방에 2층 침대가 2개로 선배와 신입생이 함께 생활했다. 학내 게시판 여기저기에 서클 가입 권유 포스터가 붙여졌다. 미식축구, 태권부, 유도부, 축구부, 야구부, 테니스부, 산악부 등 운동부가 근육질의 회원 사진으로 신입들을 유혹했다. 연극부, 합창부, 기악부, 농악부, 상록학보사, 서둔야학, 올(ALL, 문학동우회) 등 문화예술부 포스터가 빈자리를 채웠다. 또한 현수막 형식으로 각종서클이 소개되었다. 농사단, 흥사단, 한얼, 기러기. 쿠사(kusa, 유네스코학생회), 키(Key), 일레븐, 마라푼다, 독농가연구회, MLS(Music Lover Society) 등이 기억난다.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며 몇 개의 모임에 가입했다. 소통의 기본 수단인 막걸리 덕분에 많은 학우들과 친해졌다. ᆞ공휴일 저녁이면 수원 역전에 있는 황금마차, 동신옥 등을 단골처럼 드나들었다. 북문 근처에 주인 할머니가 둥그런 철판에서 지글지글 볶아 내놓은 돼지갈비집에 가면 농대생들이 자리를 꽉 메웠다. 수원에서는 서울대 배지가 힘을 발휘했다. 술집에서도 배지들에게 친절했다. 손목시계를 순서대로 맡기고 외상술을 마셨다. 그러다가도 야간 통행금지로 11시 10분 전에 역전 술집에서 나와야 했다. 농대 정문까지 소리소리 지르며 비틀비틀하면서 걸어갔다. 5월이 되면 농대 뒤편에 있는 푸른지대 딸기농장은 미팅 후 꼭 들르게 되는 단골코스였다. 학교소식지 상록학보는 이성 친구들에게 보내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농림축공화경생잠가수교.
2학년이 되어 입학 시 택한 전공에 따라 10개의 학과로 나뉘어졌다. 수원농림전문 시절에 개설된 농학과, 임학과부터 시작하여 학과가 개설 되는대로 축산학과, 농공학과, 농화학과, 농경제학과, 농생물학과, 잠사학과, 농가정학과, 수의학과, 농업교육학과가 뒤를 이었다. 1968년  2학년이 되자 농학과에서 원예학과가, 농화학과에서 식품공학과가 분리 신설되었다. 농대법대로 일컬어지는 농학도로서 농학 전반에 대해 폭넓게 강의를 들었다. 전공과목 또는 전공선택으로 ᆞ재배학원론, 작물생리학, 임학개론, 축산학 개론, 농기계학, 토양학, 생화학,ᆞ 농업경제학, 농업생물학, ᆞ잠사학 개론 등이다. 이스라엘 농업과 상록인 특강으로 유명한 유달영 교수님의 말씀 ‘농업인구가 70%가 넘는 한국사회에서 농업입국을 비전으로 대학생활에 열심 하자’에 저마다 각오를 다졌다. 학우들은 농장, 산행, 목장, 육묘장, 과수원에서 땀을 흘렸다. 농지 측량, 농기계 설계, 화학 실험, 농가소득 증대방안 토론회, 현미경 관찰, 송충이와 진딧물 채집, 누에 키우기와 잠사공장 방문, 요리강습과 의류 재단, 소의 해부실험, 가축 진찰, 실업고교 실기교육 등 점점 심층 전공에 익숙해져갔다.
 
3선개헌 반대
1969년 봄 3학년이 되자, 여당인 민주공화당에서 대통령의 3선 연임의 필요성을 골자로 하는 개헌발언을 시작했다. 야당인 신민당(新民黨)은 즉각 반대 표명을 했다. 야당들의 개헌 반대 투쟁과 때를 같이하여 6월 12일부터 서울대·고려대·연세대·경기대·경북대 등 전국 20여 개 대학가에서 개헌 반대 시위가 연일 일어나 경찰과의 대치소동이 벌어졌다. 농대 캠퍼스도 연일 반대 시위로 학내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2년 전인 1967년 6월 8일 7대 국회의원선거 결과 민주공화당이 50.6%의 득표를 얻었다. 대학에서도 6·8 부정선거규탄 데모를 간간히 벌였지만 수일 후 조용해졌다. 그러나 3선 개헌 반대 데모는 반대의 강도와 시위 기간이 달랐다. 언론도 야당의 목소리에 가세하였다. 그러나 여당에서는 개헌안을 9월 9일 정기국회 본회의에 상정하여 개헌안과 국민투표 법안이 통과되었다. 3선 개헌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의 문호가 열렸고, 유신체제로까지 연장되는 길이 마련되었다. 이후 학생들의 관심은 ᆞ상록문화제, 상록학보사 주최 과 대항 심포지엄, 학과별 페스티벌, 단체마라톤대회 등으로 관심이 전환되었다. 학생회장 선거 열풍도 가세했다. 학생ᆞ회장 선거는 출신고교, 향우회, 서클, 학과 중심으로 표 몰이를 해갔다. 이슈보다는 조직이 효력을 발휘했다. 3학년 때 기숙사를 나와 서둔동 마을에 하숙생활을 했다. 초가을 오후 하숙집 방에서 중간시험 준비를 하다가 연탄가스에 중독되었다. 가슴이 답답하여 방에서 바람 쐬러 나왔는데 마당에서 쓰러졌다. 하숙집 아주머니, 같은 방 선배와 이웃 하숙생들이 리어카 구급차(?)에 축  처진 필자를 실었다. 다행이 근처 이화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살아났다. 1970년 봄 4학년이 되자 각과별로 졸업여행을 끝내고 사회진출의 길 찾기에 분주해졌다. 대학원 지망자, 농촌진흥청, 임목시험장, 축산시험장 등 연구계,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농업진흥공사 등 공공기관, 산업계, 일부는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우들도 있었다. 기술고시(농림직, 기계직, 토목직)는 1972년과 1975년에 합격자의 다수를 차지했다. 병역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재학 중 또는 졸업 후 군에 입대하거나, 학훈단 생도들은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였다. 졸업생들은 다방면으로 국내외 학계, 연구기관, 산업계, 관계로 흩어졌다.
 
환갑 단체여행
동기모임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다. 기억이 남는 여행은 목일진 박사가 소장이었던 대관령 고랭지 감자연구소(2004. 11), 농업진흥공사 간부를 끝으로 하고 도인(?) 생활을 즐기는 안대훈 회원의 자택 ‘만소당 (滿笑堂)’ 방문(2006. 9), 입학 40주년 기념 불국사 여행(07. 3), 회갑기념 단체여행(2008. 9), 이상무 회원이 사장으로 재직한 한국농어촌공사 본사가 있는 전남 무안·나주·순천 지역 방문(2015. 4) 등이다. 그 중 꽃은 역시 회갑 기념 2008년 단체여행이었다. 여행지는 67동기 대표인 농촌진흥청 농업통계 전문가 한원식 박사의 고향인 강화도였다. 참석 인원은 정회원 16명, 준회원까지 28명이었다. 입학 정원 30명의 과반수를 넘겼다. 강화역사관, 1871년의 신미양요와 1876년 일본 운양호 사건이 벌어진 민족 시련의 현장인 용두돈대, 그리고 강화평화전망대를 둘러보고 팬션 ‘노을이 머무는 곳’에 짐을 풀었다. 황청포구 ‘갯마을어부의 집’에서 맛깔스런 저녁을 거하게 즐겼다. 콘도에 들어가서 환갑 축하식을 시작했다. 2007년도에 환갑을 치룬 돼지띠들은 한쪽 소파에 자리를 취하고, 환갑이 된 쥐띠들은 오른쪽에 좌정하였다. 도우미 소띠들은 케이크와 포도와 사과, 발레타인 21년산을 준비하고 촛불을 붙였다. 소띠들은 쥐띠들께 축하 절을 하니 쥐띠들이 맞절을 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다음날은 석모도, 동막 갯벌을 들러보고 귀경하였다. 2017년 4월에는 입학 50주년을 기념하여 강원도 동해안 일주를 부부 동반여행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마음은 다시 모일 4월의 그 날로 달려가고 있다. ‘동기들아 응답하라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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