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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뵙고싶었습니다 | 팔순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저술활동중이신 한인규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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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8-31 11:41 조회1,2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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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저술 활동중이신 한인규(축산52)명예교수
 
•일시: 2016년 6월22일
•장소: 서울대 농생대 소회의실
•대담: 하종규 명예교수
 
-하종규 명예교수(이하 하): 요즘 근황을 말씀해주시지요? 건강상태는 어떠십니까?
-한인규 명예교수(이하 한): 내가 현재 여든 세살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 거동이 약간 불편하고 그래서 옛날만큼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지팡이가 나의 큰 의지가 되고 있습니다. 시력이 약하고 사지가 약해 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팔순을 지나면서 스스로에게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예전처럼 활발하게 활동하지말고, 조용히 노후 인생을 보내자하는 것이 최근의 나의 삶의 신조입니다.
 
-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지난 10년동안 저술활동을 매우 활발하게 추진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저술활동의 대강을 말씀해 주시지요.
-한: 사실 지난 10년동안 비교적 많은 책자를 발간하였습니다.『학문생활50주년 기념문집』전5권, 『AAAP 25년사』,『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동창회 창립60주년 기념문집』전3권,『한국영양사료산업60년사』상하권, 『목운문화재단 창립기념문집』전3권,『동물영양학 개정판』,『사료자원핸드북개정판』상하권,『회고록-열정의 풍경과 나눔의 시간들』,『초년고생은 은을 주고산다』,『참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등 다수였습니다. 지금 집필중에 있는『은혜와 감사는 하늘처럼』도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또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하나 소개하자면 2014년 3월에 모교인 성주중•고등학교 은사이신 백삼문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모교인 성주중학교에 기념식수를 했습니다. 30년 전에 여러 제자들이 존경하는 선생님 흉상을 만든다고 돈을 걷자고 하여 모금운동까지 전개하였으나 흐지부지되어 매우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 기념식수라도 해놓지 않으면 그 선생님이 잊혀진 분이 될 것 같아서 작년에 내가 중심이 되어 실천에 옮겼습니다. 나도 선생을 오래 했지만, 나를 가르친 선생님을 기리고 섬겼다는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삼문 선생님은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굉장히 무서운 분이셨어요. 그러나 1학년 때부터 한문을 가르치시면서 늘 올바르게 올곧게 살아라, 매일 일기를 써서 자신이 그날 잘못한 것을 살피고 잘한 일은 더욱 육성해 나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도 일기를 쓰기 시작해서 일기가 꽤 많았어요. 평생 쓴 것을 연구실에 다 갖고 두고 있다가 AT센터에 있는 재단사무실을 나오면서 다 없앴지요.
그리고 헐벗고 굶주리던 농민들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는 일은 참으로 숭고한 일이라는 것도 가르쳐주셨습니다. 내가 농대로 진학을 결정하게 된 것도 그 선생님의 영향입니다.
 
-하: 최근에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일이 있을까요?
-한: 학장 재임시절에 모교 발전에 노력한 일을 기념하여 2013년 농생대에서 기념식수를 해주었는데 아직까지는 학교에서 기념식수 해준 대상자가 나 한 명뿐인 것 같아서 기쁘고 나한테 상당히 의미 있고 고마운 일입니다. 그 심은 소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듯이 나의 모교가 크게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2015년 10월 14일 서울대학교 개교 69주년 기념식에서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을 받았는데 상금은 없지만 명예로운 상으로 농생대 동문 중에는 허문회 선생님 이후로 20년 만에 두 번째로 내가 받았으니, 아무나 쉽게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닌 희소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 선생님께서 제11대 농생대 학장으로 재임하셨을 때 IBRD차관으로 농생명과학공동기기원(NICEM: 이하 공동기기원)을 설립하신 것은 불후의 명작이라고들 합니다. 얼마전 지난 4월에 이 발전된 모습을 보고 감회가 크셨으리라 믿습니다. NICEM에 초청 받으신 이야기도 해주시지요.
-한 : 내가 선거로 학장이 된 민선 초대 학장입니다. 그래서 1989년 7월에 학장이 되고 나서 바로 교수들에게 설문을 했더니 제일 중요하고 시급한 핵심과제가 관악캠퍼스로의 이전과 연구 기자재 확충사업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일환으로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아 1992년 11월에 그 때는 전국농업과학공동기기센터라고 하는 이 NICEM을 설립했어요. 그 뒤에 관악으로 이전도 했고 공동기기원도 설치해서 교수들의 바램을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하 : 우리 대학 명칭에 ‘생명과학’의 정신을 담는 일부터 학장 시절 하신 일이 많지만 학장직을 떠나신 이후에도 사비를 들여 워싱턴까지 가셔서 세계은행으로부터 6천만 달러(700억)에 이르는 차관을 도입함으로서 우리나라 13개 국립농업관련 대학의 연구장비 확충과 NICEM의 설립을 주도하셨습니다. 그 과정을 좀 더 상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한: 농생명과학공동기기원은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기센터로 후배들이 잘 운영해 나가는 것 같아서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워요. 나는 자존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수원을 떠나 관악으로 오면서 자연대나 약대 등에서 함께 연구하자고 할 정도의 필요한 연구 기자재를 보유한 기기센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우리 농생대에서 지금은 적어도 기자재가 없어서 연구를 못한다는 말은 못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크고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과 농생대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4월에 NICEM을 방문했는데, 현재 92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내가 학장 시절 수원에 있는 농대 전 직원과 연습림 직원을 다 포함해서 92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일자리 창출을 많이 했다고 자부합니다. 이 기회에 NICEM을 이렇게 발전시켜 주신 역대 원장님들에게 특히 9년 동안이나 수고한 박은우 원장님의 공적을 높이 평가 하고 싶습니다.
대학·학과명에 ‘생명’이란 용어가 들어가면서 졸업생들의 진로가 확대되고 학장직을 떠난 이후에도 여러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준 것 같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것 같아 매우 흐뭇합니다. 게다가 설립하고 초대 소장한 사람이 방문했다고 현수막도 걸고 전 간부 직원이 나와서 배웅까지 해주어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 : 그리고 또 한 번 축하받으실 일이 생겼지요?
일본 규슈산업대학(九州産業大学, Fukuoka)에서 오는 8월 22일에 열리는 제17회 아세아태평양축산학회(AAAP) 개막식에서 제11회 AAAP 축산과학상을 한국 축산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받게 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AAAP는 한인규 선생님께서 창설을 주도하셨고 1985년에는 한국에서 제3차 회의를 개최하였으며 그 후로도 학회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아시아 지역 축산학자들의 연구 의욕을 높이고자 한 교수님께서 제정한 이상의 상금을 처음에는 목운문화재단에서 제공해 오다가 이제는 주최국에서 상금을 주도록 규칙이 바뀌면서 이번에 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후학들의 보살핌이 있어 이런 권위있는 상을 타게 되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 선생님께서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신가요?
-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많이 생각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시 태어나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시 농생대에 입학하고 싶습니다. 또 지금의 아내와 네 자녀를 꼭 다시 만나고 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요. 둘째와 셋째는 그들 부부가 교수를 하고 있는데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첫째와 넷째도 학자가 되어 우리집은 가난하게 살더라도 명실상부하게 선비 가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는동안 헐벗고 굶주리던 우리 국민에게 쌀과 고기와 우유와 계란 등을 공급하는 일에 성공하였듯이 다음 생에도 다시 농생대 교수로서 열심히 일하여 다음 세상에서는 70억에 이르는 모든 인류가 다 굶주리는 일이 없이 고급식품인 고기, 우유, 달걀을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내 꿈이 너무 큰가요.
그리고 직장의 오피스 와이프였던 김동암 선생, 제자지만 하종규 교수 같은 인생의 반려자를 다시 만나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교를 돕고 동창회를 돕고해서 모든 분야가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세상에서는 반듯이 잘 가르치는 교수가 못되더라도 가슴이 따뜻한 교수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복도 더 받아서 태어 났으면 좋겠습니다. 목운문화재단과 상록문화재단에 장학금을 좀 더 지불할 수 있고 가난한 동창회 살림도 도와 주고 싶거든요. 한 100 억 정도의 부를 가지고 태어나서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과 미세먼지가 없고 깨끗한 물이 흐르며 꽃피고 새가 우는 곳에서 행복을 노래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걱정도 있습니다. 조물주께서 “그런 곳이 있으면 내가 가지 너를 보내겠냐”고 말씀하실 것 같아서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모두 나의 꿈이요 소원일 뿐입니다.
 
-하: 학생들이나 젊은 교수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한: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시험 볼 때 부정행위를 하지 말고 정직하고 올곧게 실력있는 학생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현재 교수들에게는 지금은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오고 있으니 이들과 함께 교수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하: 학장과 동창회장을 해보셔서 양쪽의 입장과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임 회장으로써 동창회에 바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지요.
-한: 동창회가 정말 잘 되어야 대학이 발전합니다. 대학이 필요한 일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코넬대학 동창회는 운영하고 남은 돈을 매년 대학에 기증합니다. 또한 회원 간에 응집력이 좋아지길 바라고 지금의 동창회가 좀 더 젊어졌으면 합니다. 대학의 중심이 되는 동창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상록문화재단 설립 후 일성장학금, 목운문화재단, 서현문화재단 등 선배들이 후배에게 주는 장학금이 연4~5억 정도로 성장한 것은 기념비적인 일로 꼭 언급하고 싶어요. 지금처럼 동창회가 활성화된 것에 대단히 만족하고 앞으로 더 발전하기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하: 대담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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