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udeamus igitur ! 아카펠라 합창반 하진호(농대 수의학과 64), 현정오(농생물 66) > 주요기사

본문 바로가기

Since 1948, www.snuagria.or.kr 페이스북아이콘트위터아이콘

주요기사

동창회보주요기사

동창회보

주요기사

상록그리고상록의아들 | Gaudeamus igitur ! 아카펠라 합창반 하진호(농대 수의학과 64), 현정오(농생물 66)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4-21 17:31 조회2,341회 댓글0건

본문

 
Gaudeamus igitur !  아카펠라 합창반
 
                               하진호(농대 수의학과 64), 현정오(농생물 66)
 
 
농대를 입학해 보니 합창단이 없었다. 멋진 연습림도 있고 강당도 있는데 노래는 안 들리고 들리는 건 막걸리 타령뿐이니 지성의 전당이 맞느냐고 『상록학보』에 비평 의 글을 하나 보냈다. 그때 서클이라고는 오흥수 선배가 리드하는 MLS(음악감상부) 외에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모 임과 운동부 몇 개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어느 날 상록사 방으로 이동아(농학 63) 선배가 찾아왔다. 법대를 다니다가 다시 농대에 입학한 그 선배 가 주축이 되어 남녀혼성 합창반이 조직되고 어느새 농 가정학과 여학생들이 다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남녀 학 생들이 섞여 있어 연습이 끝날 때쯤에는 분위기도 묘해 지고 노래 실력으로 누굴 빼고 남기려니 너무 곤란해져 서 슬그머니 남성합창 무반주 아카펠라로 바꾸어 출발하 게 되었다. 합창은 파트별로 3~4명, 베이스 6명, 멜로디 6명 정도 가 필요하므로 우리끼리 오디션 보고 선발해서 20여 명으 로 구성을 마쳤다. 그리고 강의실에서 교무실로 가는 중 간에 있던 강당에 유리로 되어 있는 테라스가 있었는데  2학기부터는 수업 끝내고 지나가시는 교수님들 들으시라 고 연습 겸 동아리 홍보 겸 오후 4시 44분이면 월화수목 금요일에 매일 30분씩 그곳에서 연습을 하고는 기숙사로 밥을 먹으러 갔다. 그렇게 몇 달 지나고 나니 걸어가다가도 서서 듣거나 박 수를 쳐주는 교수님도 생기고 교무실에서 노래 잘하더라는 칭찬에 조성지 교수님이 멋진 노래라고 치켜세워 주셨다. 학교에는 이미 교수합창단이 있어서 음악에 조예가 깊
고 교양영어를 가르치던 조성지 교수님이 지휘와 함께 교 수합창단을 이끌고 계셨고 그 교수님이 우리 합창반 지 도 교수를 맡아 악보도 주고 많은 도움을 주셨다. 교수합 창단은 연습을 꾸준히 해서 정기적으로 발표회도 했으므 로 어느 날 ‘저녁때 우리 연습 들으러 오라’ 하시면, 가서 듣고 배우기도 했고 나중에는 교수합창단 발표회 때 찬조 공연을 하기도 했다. 1학년 때 몇 달 연습하고 나니 스스로 잘한다는 자만 에 빠져 서울에서 열린 교회 음악 콩쿠르에 자신 있게 나 가서 꼴등을 했다, 어찌나 분한지 정식으로 지휘와 발성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지휘법 레슨을 받으러 후암 동으로, 또 발성법을 배우러 금호동으로 다니느라 1주일 에 두 번씩이나 서울로 갔다. 강의 끝나자마자 출발하여 공부한 후 서울역에서 밤 11시 호남선 타고 12시 10분쯤 수원역에 도착하면 손바닥에 통금 검문통과 도장을 받고, 학교까지 걸어가 문 잠긴 기숙사 담을 넘어들어갔다. 마 침 방이 기숙사 1층이라 창을 노크하면 기다리던 선배가 문을 열어주곤 했다. 아버님이 대한방직 일본 지점장으로 계실 때 일본초등 학교에 다녔다. 3학년 때 주로 5, 6학년으로 구성된 합창 단에 선발되어 전국대회 1등을 한 경험도 있는데 어머니 의 남다른 교육 철학으로 피아노를 배운 덕인 것 같다. 어 머니는 앞으로는 남녀 불문하고 피아노를 칠 줄 알아야 하고 노래를 할 줄 알아야 하며 그 다음에 운동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셨고 설거지와 밥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거지도 시키셨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때는 하모니카 반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교회를 다니면서 학생성가대 지휘를 맡게 되었다. 교회 성가대 지휘자였던 분이 선명회 합창단 4대 지휘자 김종일 선생님으로 그분이 교양으로 지휘법 강의 를 하실 때 들었는데 그때 들은 것이 평생의 기초가 되었 다. 발성법 레슨을 해주신 서종일 선생님은 그 당시로서 는 너무 앞서가는 벨칸토 발성법을 강의하셨지만 합창반 을 리드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어서 참 좋았다. 그렇게 서울을 오르내리며 지휘법을 2년간 배우니 왼 손에 소리를 태우고 오른손으로 박자를 저어주면서 다 같 이 숨도 쉬도록 하면서 이끄는 것이 지휘라는 것을 알게
Gaudeamus igitur !  아카펠라 합창반 하진호(농대 수의학과 64), 현정오(농생물 66)
동아리 소개
예전 그대로 노래하고 지휘하는 하진호 동문
 80호   27
되었고, 편지 봉투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상록사 노래 미치광이 앞’이라고 쓰면 편지가 왔을 정도로 노래에 빠 져 살면서 합창반 홍보를 하고 다녔다. Gaudeamus igitur!’로 시작하는 ‘대학축전서곡’과 ‘들 장미’ 등이 우리의 주 레퍼토리였는데 곡들을 다 외워서 연습림에서도 부르고, 딸기 먹다가도 부르고, 시내 식당 에서 밥을 먹다가도 부르면 옆에서 멋지다고 박수를 쳐주 었다. 그렇게 소문이 퍼져서 서울의 각 여대 합창반에서 함께 공연하자고 편지도 많이 받았고 녹원사 오픈 하우스 때 공연을 한 추억도 있다. 1966년에는 서울대학교 단과대학 합창 콩쿠르에서 우 리 농대 합창반이 1등을 했다. 상패도 받아 신이 난 우리 들은 통금도 지난 밤 12시 10분에 수원역에 도착하여 수 원역사 내에서 합창을 시작했다. 하도 멋지니까 역장님도 제지하지 못하고 듣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 후로는 농대 학장님의 적극 후원을 받게 되었고 상 록문화제 음악회 총지휘를 매년 맡게 되어서 합창공연에 솔로 파트는 음대 학생을 초청해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우승을 기념하여 다음해인 1967년 가을, 지붕 이 뾰족해서 아카펠라 화음이 특히 더 멋지게 들리는 종 로 태화관에서 10곡 정도를 준비하여 발표회를 가졌다. 필자는 1학년 때부터 4학년 선배도 계신 합창반을 지휘 하며 이끌어갔는데, 선배들이 잘 포용해주어 합창반이 유 지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동아 선배가 없었으면 농대 합창반이 출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목소리도 예뻐서 꼭 솔로를 부탁했고 이동아 선배가 테너로 솔로 파트를 부르 는 동안에 나머지 회원들은 숨을 고르면서 쉬기도 했다. 합창반에서 또 한 사람 조본형(수의 63) 선배를 빼놓을 수 없는데 뭐든지 ‘하자, 하자’ 하며 앞장서서 추진을 해 주어 합창반이 활발한 활동을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다. 그리고 변승호는 수의과 동기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악 보를 등사기(가리방)로 긁고 밀어내는 일을 밤새 도맡아 서 했다. 나는 내 방에 그 기계들을 들여놓기 위해 1학년 끝나고 자취방을 옮겼다. 그 당시는 농학과나 임학과 교재가 일본어로 된 것밖 에 없을 때라 필자는 초등학교를 일본에서 졸업한 덕분에 일본어를 가르쳐서 돈을 좀 벌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합
창단에 필요한 등사기도 사고, 가끔은 시내 화춘옥에 가 서 갈비도 먹고 자취방에는 친구들이 언제든지 와서 먹으 라고 삼양라면을 사서 쌓아놓기도 했다. 그 라면을 먹고 나서 우리는 밤새도록 악보를 만드는데 하숙집 바로 옆 당구장에서는 밤새도록 당구를 치는 친구들의 소리가 들 렸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늘 어느 모임에서든지 멋지게 노래를 부르고 나면 스스로 흐뭇해하며 만족했던 것 같다. 그런 분위기 덕인지 합창반원 4명이 농가정학과 여학생과 사귀어 결 혼에 성공했고, 제일 멋쟁이 이동아 선배는 입학 후 바로 결혼해서 살고 있었으므로 그 댁에 놀러가서 우리들은 밥 을 자주 얻어먹기도 했다. 4년간 합창반을 지휘하며 즐겁게 지내고 졸업할 때는 제5회 상록문화상(상록학보사에서 학술, 예체능, 농어촌발전 3부문에서 활발히 활동한 학생에게 졸업할 때 주는 상)을 받았 다. 예체능 분야의 상 이름은 ‘Fraxinus’(물푸레나무 속명) 인데 예체능 분야 수상은 1~4회까지는 미식축구부를 비 롯해서 체육 분야만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졸업하면서 현정오 후배에게 합창반의 지휘봉을 넘겼 고 배수봉(임학 69) 동문, 하영호(농교육 68) 동문이 이어 받아 해마다 상록문화제 합창공연을 하고 수원 시내 교회 중고등부성가대합창축제에 찬조출연도 했다고 한다. 농대 합창반을 회상하다 보니 서울대 음대 나온 아내 를 교회에서 반주자로 만나 결혼하고 나서 아내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던 것도 생각나고 졸업 후 차린 농장 이 홍수에 쓸려간 이후 사느라 바빠 못 만나고 있는 그때 그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