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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우리나라 직업·기술교육의 태두 이무근 서울대 명예교수(농생물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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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4-06 16:39 조회2,6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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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직업·기술교육의 태두
이무근 서울대 명예교수(농생물 60)
 
 
왼쪽부터 이찬 농교육 교수, 김진모 교수, 이무근 명예교수, 부인 신주현 여사, 정철영 교수, 정진철 교수
 
농대를 입학하신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청소년기를 농촌에서 보냈어요. 그 때 6.25 사변과 1950년대의 격동기를 겪으면서 농촌생활의 어려움과 농사일이 힘들다는 것을 체험하였어요. 대학 입학 지원서를 쓸 무렵에도 계속 힘들었던 농촌생활이 머리에 남아 농촌을 발전시켜 보자는 생각에 농대를 지원했어요.
 
대학 시절 추억 중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용산고 동문 5명이 학교 뒤 서둔동에 위치한 집에 딸린 300여 평의 텃밭을 빌려 토마토를 재배하였습니다. 학교 옆문 쪽 여학생 기숙사로 쓰던 집에서 연습림 가는 길 중간에 있었는데, 전공지식을 활용한 영농 체험과 함께 경제적 도움도 얻고 싶었지요. 농업은 기술 못지않게 경영도 중요하며 기후나 토양 등의 영향도 크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3학년 때 울릉도로 농촌 봉사활동을 갔다가 배 멀미도 하고 기상 악화로 배가 떠나지 못해 며칠간 더 머물면서 여비가 떨어져 보리밥과 오징어로 끼니를 때우면서 동고동락하던 때도 생각납니다.
 
ROTC 장교로 최전방에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ROTC 2기로 21사단 포병장교로 배속 받았어요. 그런데 임무는 관측장교 대신에 DMZ에 인접한 강원도 양구군 동면 해안펀치볼에서 1개 소대 병력을 데리고 민간통제선 안에 있는 50,000여 평의 땅을 개간하여 예하 부대의 부식을 추가 보급하는 영농장교로 근무했습니다. 2년간 배추, 무, 감자, 콩, 옥수수, 벼 등을 재배하면서 농대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종합하여 실습해본 참 좋은 기회였어요.
 
교육대학원으로 진로를 어떻게 바꾸셨어요?
농대에 입학한 후 농촌발전을 위해 농업교사가 되어 우수한 영농후계자를 양성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당시에는 각 대학에서 전공과목만을 이수하고도 교사가 되는 때였으나, 훌륭한 농업교사는 농업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은 물론 교육관련 지식도 풍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964년 졸업과 동시에 신설된 서울대 교육대학원 실업교육과 농업교육전공에 제1기로 진학하였습니다.
그 무렵 문교부는 우수한 실업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농업교육과, 공업교육과, 상업교육과, 수산교육과 등을 전국 여러 대학에 신설하였어요. 그러나 전문교과교육을 담당할 교수가 없어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여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내가 농업교육과 교수 요원 양성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1년간 연수를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남은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고 농업교사가 되는 대신에 1969년부터 농업교사를 양성하는 농업교육과 교수로 임용되어 30여 년간 서울대 농산업교육과 교수로 근무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 교수로서 산업교육 우수인재 양성, 산업 교육 전공 박사과정 신설, 실업계 고교와 전문대학 교육개선을 위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초대원장과 실용교육 중심의 대학 총장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산업 교육의 기초를 다져 놓는 등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내가 농업교육을 비롯하여 산업교육과 전문대학부터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직업기술교육에 관해 폭 넓게 교육•연구하고 정책자문을 하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초대 원장과 대학 총장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바탕은 대학원에서 전공 교과영역을 광범위하게 이수하였던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1970년대 초 미국 대학에서는 농업교육과, 공업교육과, 상업교육과, 가정교육과, 보건교육과 등 5개 학과가 하나의 큰 학과로 통합되는 등 직업기술교육 분야의 대 개혁이 있었는데 그 직후에 새로운 교육 체제와 교육과정 속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고등교육학회장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고등교육의 문제와 발전 방향에 대해 말씀 해주시지요.
우리나라 대학들은 대학별 교육목적과 역할이 분명하지 못하고 수요자 보다 공급자 위주의 백화점식 운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전문성도 부족하고 경쟁력도 약하지요.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박사과정을 개설하고 있는 연구중심 대학은 4년제 대학 전체 1400여개 중 20% 미만이고 나머지 대학들은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중심 대학이에요.
우리나라는 4년제 대학 200여 개 중에서 84%가 박사과정을 개설하고 있으며 연구중심 대학과 교육중심 대학을 동시에 운영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고 있어요, 대학들은 하루 빨리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특성화 대학으로 전환하여 산업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국제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일리노이대학 국제동문상을 제정 후원하는  Jagdish N. Sheith 박사 내외분과 함께
 
미국 유학시절 교수-학습 자료를 비롯한 기록물이 잘 보관되어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하셨는데 우리나라 대학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요?
미국의 대학들은 기록물 정리가 참 잘되어 있어요. 내가 공부하였던 일리노이대 직업·기술교육학과도 1860년대에 신설된 이후 과목별 교수-학습 자료를 계속 누적 정리 보관하여 오고 있어서 학과의 발전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이나 학과들은 기록물 정리가 잘 안되어 있는데 농생대는 예외이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 농생대에 농업사 또는 농업기술사를 전공하는 교수가 있어서 학문적으로도 체계화하고 학생들에게 농업과 농촌, 농업과학에 관한 역사, 신념과 철학도 심어주는 교과목이 개설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장수 국가가 되면서 고령사회의 교육과 직업이 중요해졌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요?
2015년 유엔의 새 연령 분류 기준에 따르면 17세 미만은 미성년,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는 노년, 100세 이상은 장수 노인이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 사회(65세 인구 7%)에서 고령사회(14%)로 진입하고 있고 머지않아 초고령사회(20%)로 전환될 전망입니다. 다른 한편 2030년이 되면 현재 직업의 80%는 없어지거나 다른 직종으로 바뀐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생동안 8~10 번 직장을 옮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동문들도 평균 수명 80대에 맞는 생애 설계를 하여 평생 동안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우는 평생학습이 생활화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학들은 성인교육을 더 강화하고 우리는 방송통신대학을 비롯한 다양한 성인교육기관을 적극 활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변 인물들의 표현을 빌리면 표정은 온화하고, 조용한 멘토이고, 따뜻하기까지 한 완벽주의자라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자서전을 읽다가 무엇보다 다르게 느낀 점은 작은 경험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녀, 제자 할 것 없이 교육에 바로바로 적용시키고 응용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위에서 존경받고 훌륭한 분으로 불리는데 어떤 생활 철학을 가지고 계신가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동안 저를 키워주신 부모님, 가르쳐 주신 선생님, 항상 주변에서 격려해주고 조언해준 선후배, 친지 여러분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공이 교육학이다 보니 일상생활에서도 교육적인 마인드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능하면 책과 가까이 하면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너무 일찍(?) 쓰신 회고록에, 예언처럼 2번 더 자리를 옮기셨던데 최근의 근황은 어떠하신지요?
2006년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글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까지 서울대 교수로 30여 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초대원장으로 3년, 그리고 경일대학교 총장으로 4년을 역임하면서 3번 자리를 옮겼었지요. 그러면서 고령사회를 맞아 앞으로도 최소한 2번 정도는 더 자리를 옮기면서 생활하지 않을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의 미래 진로를 전망했어요. 그런데 그 후 동명대학교 총장 3년을 역임하였고, 지난 3월 1일부터 경동대학교 메디컬캠퍼스(원주문막) 총장으로 재직 중이어서 예측했던 대로 되었는데(웃음),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하며 생활하고 싶습니다.
 
일리노이대 자랑스러운 국제 동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요즈음 우리 대학원에도 외국 학생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부를 마치고 자국에 돌아가면 학자나 전문분야의 지도자로 요직에서 활동할 것입니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과 가장 먼저 연결되는 분야는,  공업, 서비스 분야 등으로 이어지면서 발전되어 갑니다. 따라서 농업생명과학을 전공한 외국인 동문들과 협력관계를 긴밀히 유지하고, 자국에서의 활동이 우수한 외국 동문들에게 상을 주는 등 유대를 강화하면, 국제교류 활성화의 거점이 되고 국제적으로 발전하는 농생대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농생대는 물론 평창에 신설된 국제농업기술대학원의 역할에도 기대가 커요.
 
부부가 같이 등산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1980년 초에 건강에 무리가 가서 주말마다 같이 등산을 하기 시작해서 30년 넘게 계속하고 있어요. 몸도 건강해졌고 같이 걷다 보면 자연에 순화도 되고, 유머가 많은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재미도 있고 서로 이해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후배, 제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먼저 각자 자아 정체감과 자아 존중감을 확립하고, 자신의 특성을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여 최소한 10 ~ 20년 미래를 전망하면서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고 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십시오. 또한 그 일을 바탕으로 일생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자신의 꿈(희망, 비전, 목적)을 설정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세요.
이를 위해 교양인, 전문인, 국제인, 봉사인, 평생 학습인의 역량을 키우기 바랍니다. 특히 국제화시대에 2개 외국어는 구사해야 합니다. 모국어를 하는 것은 눈 두 개가 앞에 달린 것과 같고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눈이 뒤에도 달린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 학력
1975~1977 일리노이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Ph.D)
1964~1969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1960~1964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 농학사
 
>. 경력
2015. 3~현재 경동대학교 메디컬캠퍼스(원주 문막) 총장
2010.11~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2007.12~2011.02 동명대학교 총장
2006.09~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2001.03~2005.02 경일대학교 총장
1997.09~2000.09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초대 원장
1969.09~2001.02 서울대학교 농산업교육과 교수
 
>. 수상
1992 교육부장관 표창
1998 서울대학교총장 표창(30년 근속)
2001 홍조근정훈장
2005 청조근정훈장
2014 일리노이대학교 자랑스러운 국제동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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