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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평양-개성, 세 시간의 녹화(綠化)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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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12-24 15:46 조회1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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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개성, 세 시간의 녹화(綠化) 오디세이
이규연(농학81)
 
“2018년 8월 20일, 평양입니다. 7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또랑또랑한 라디오 아나운서의 음성과 함께, 대동강의 아침이 밝았다. 우리가 묶고 있는 호텔은 평양의 양각도(羊角島)에 있었다. 한강의 여의도와 흡사하게, 대동강에 떠 있는 섬이다. 모양이 양의 뿔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남북 유소년 축구대회를 취재하거나, 참관하기 위해 온 일행이 9박10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귀환하는 날이 다가온 것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양의 뿔’ 지점에서 평양 시내로 향했다. 황해도와 개성을 거쳐 파주 도라산역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버스는 들머리를 남쪽으로 잡았다. 김일성 광장 주변에서 평양 시민들의 수상한 행렬이 포착됐다.
“하나 둘! 하나둘! 하나 둘!”
저마다 손에 붉은 깃발을 들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긴 행렬이 평양 시내 곳곳에서 발견됐다. 9.9절을 코앞에 두고 행사 준비를 위해 모인 인파였다. 9.9절은 북한의 창건기념일이다. 북측은 5년 만에 다시 대대적인 집단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외 과시용인 듯싶었다. 북한 내부에서 뭔가, 변화의 조짐이 느껴졌다. 버스는 남쪽, 남쪽으로 향했다. 평양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조형물인, ‘3대헌장 기념탑’이 눈앞을 가렸다. 기념탑을 지나자 ‘강남’ 표지판이 나타났다. 평양 주변에도 신기하게 강남 구역이 존재했다.
 
버스는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로 다가가고 있었다. 9일 전, 우리가 평양으로 들어올 때는 버스에 커튼이 쳐져 있었다. 하지만 귀환 일정에선 북한 안내 요원들이 커튼을 거두어 냈다. 제한적이나마 카메라로 시내를 찍고 북측 인사들과의 가벼운 담소도 나눌 수 있었다. 그만큼 9박10일 간 함께 한 일정이 북측의 경계심을 낮춘 결과이리라!
 
버스가 고속도로에 다다르자, 비록 협소한 시야지만, 도로 변을 따라 펼쳐진 나무들이 우리와 함께 달렸다. 낙엽침엽인 낙엽송(落葉松)이 눈에 가장 많이 띄었다. 생장이 빠르고, 병충해가 강하며, 목재를 얻을 수 있는 수종이다. 소나무와 잣나무 뿐 만 아니라, 거대한 메타세쿼이아도 틈틈이 눈에 들어왔다.
 
이쯤에서 11년 전, 이 도로를 역시 버스에서 목도했던 한 저명인사의 말이 생각났다. 얼마 전, 인터뷰 도중 내게 해준 소감이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했던 작가(作家) 조정래였다. 그는 방문 기간 중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을 이렇게 전했다.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도로 변과, 그 너머 언덕 곳곳이 온통 허전하더라고요. 산하는 아름다운데, 나무가 너무 없었어요.”
 
노(老) 작가가 본 것은 ‘민둥산’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본 모습과 왜 이리 다를까? 분명, 같은 길이었다. 버스에 함께 탄 북측 참사관(參事官)에게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봉사원, 교원, 군이 총동원돼 산림녹화를 해 왔습니다. 우린 그걸 ‘산림 투쟁’이라고 부르지요.”
내가 목격한 평양 남부의 식목은 산림투쟁의 산물이라는 게 참사관의 설명이었다. “2014년에 산림복원 10개년 계획을 수립했으며, 지금까지 북한 전역에 65억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참사관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 시대의 업적”이라고 첨언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보이는 낙엽송을 가리키며 “북측에서는 ‘창성 이깔나무’로 부른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민둥산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은 내게 신선한 뉴스로 다가왔다. 창밖에 보이는 나무들은 유난히 초록빛이 짙었다. 참사관의 설명대로, 요 몇 년 새 녹화된 것이리라! 헐벗은 산야를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는 노(老) 작가의 11년 전 심정은 적어도 지금은 사실이 아닌 듯싶었다. 다소 가벼워진 마음을 안고, 버스는 파주를 향해 가고 있었다.
 
1시간 반 가량 갔을까. 버스는 평양을 벗어나 황해도에 당도하고 있었다. ‘은정휴게소 500m’라는 표지판이 나오자, 버스는 바로 우측으로 차선을 바꿔 휴게소로 진입했다. 우리에게는 20분가량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이 휴게소는 평양과 개성 사이에 유일한 휴게소다. 은정(恩情)이라! 평양 시내 곳곳에서도 봤던 단어였다. 당초 김일성 주석의 은덕을 기린다는 체제수호적인 의미였지만, 이제 홍차·녹차 계열의 차 이름으로 통했다.
 
휴게소 마당에는 간이 판매대가 반기고 있었다. 북측에선 판매대를 ‘매대’라고 부른다고 했다. 다양한 물건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모든 물건들이 평양 시내보다 10~20%는 싸게 느껴졌다. 담배, 종합과자, 북한우편 세트 등이 ‘매대’에 깔려 있었다. 생소한 물건도 눈에 띄었다. ‘꿩 털 부채’가 대표적이었다. 5달러에 팔고 있었다. 정체를 알기 어려운 과일도 보였다. 어린애 머리만한 과일! “이게 무슨 과일이냐”고 묻자, 북측 봉사원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북측 공화국의 대표적인 여름과일입니다. 배와 사과를 접해 만든 배사과입니다. 한(1) 달러에 세알 드립니다. 맛이 정말 쩡합니다.”
달러를 건네자, 북한 배사과가 두 손에 놓여졌다. 과연, 맛은 어떨까? 껍질째 씹자, 연하고 달콤한 물이 입안 가득히 들어왔다. 이때, 방북단 일행인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말을 거들었다. “우리 강원도에도 비슷함 품종이 있어요. 있긴 한데 많이 보급돼 있진 않고 대개 껍질을 까서 먹게 돼 있어요.”
배사과로 갈증을 해소한 뒤 주변을 둘러봤다. 거대한 휴게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옥상에 높은 전망대가 보였다. 올라가고 싶었지만, 남측 방북단은 1층 화장실만 출입하도록 허락됐다. 한 북측 봉사원이 전망대로 가는 길을 수문장(守門將)처럼 지키고 서 있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이 봉사원이 잠시 자리를 빈 틈을 타, 까치발을 하고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가 봤다.
 
황해도 서흥군 일대의 들판과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런데! 뜻밖의 장면을 보게 됐다. 멀리 보이는 곳곳의 산하가 온통 민둥산이었다. 그렇다면 평양 주변만, 또 도로에서 보이는 곳을 중심으로만 녹화(綠化)가 이루어진 것일까? 시골의 모습은 녹화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잠시 머물다 도둑고양이처럼 봉사원들의 눈을 피해 내려왔지만, 그 잔상(殘像)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버스가 개성 65km 지점에 당도하자, 그림 같은 강 하나가 홀연히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예성강(禮成江)이었다. 황해북도 언진산에서 발원해 개성 주변을 거쳐 서해로 흘러나가는 아름다운 강! 이곳에서 안내판 ‘쒜리’를 발견했다. 남북 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 <쉬리>에 등장하는 상징적 물고기였다. 남북에 걸쳐 산다는 물고기다. 그랬다. 쉬리의 북한말이 바로 쒜리였다. 북측 참사관은 “예성강은 쒜리의 천연 산란지”라고 소개했다.
 
예성강의 아리다운 자태는 여전했다. 굽이쳐 흐르는 물줄기가 줄곧 버스를 따라왔다. 높고 낮은 언덕이 물줄기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했다. 그 높고 낮은 언덕과 산자락은 푸름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머리가 빠진 것처럼 드문드문 비어 있었다. 산꼭대기에 하늘을 배경으로 말라비틀어진 소나무가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평양을 출발하지 2시간 반. 버스는 개성 시내에 들어섰다. 자동차는 거의 없고, 온통 자전거였다. 평양과는 다르게, 건물도 회색빛이었다. 이윽고 우리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의 결합한 ‘남북합작 프로젝트’ 개성공단에 당도했다. 역시 자동차를 보기 힘들었다. 자전거도 간간이 지나갔다. 건물 간판이 보였다. 현대 오일뱅크, 현대 아산, 훼밀리 마트 등이었다.
 
우리 방북 일행 중에 가장 안타깝게 개성공단을 바라보는 인사가 있었다.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의류업체 대표 A씨였다. 60대인 그는 2년 전, ‘그날’을 지금도 총천연색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정부의 전격 명령으로 북한 종업원과 기계 설비를 놔두고 철수해야 했던 그날이었다.
“4년간 공들인 공장을 뒤로 하고 하루 만에 철수해야 했죠. 단 하루 만에 말입니다. 1천명의 북측 종업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A씨는 개성공단에 머물면서 꼭 해 보고 싶은 남북 경협사업이 생겼다고 했다. 개성 주변의 산림 녹화사업을 지원하는 일이라고 했다. 왜 산림녹화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2000년 대 초반이었다. 공장 입주를 준비하기 위해 파주와 개성을 오갈 때, 흥미로운 시설을 발견했다고 했다. 바로, 고려 때부터 존재한다는 수로(水路)였다. 벽란도(碧瀾渡)에 당도한 중국·일본·아리비아 등지의 국제상선들은 예성강 줄기를 따라 개성 주변에 접근했다. 그리고 수로를 통해 물자를 오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A씨가 본 수로는 비가 올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 빠짝 마른 상태였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도 며칠 버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런 퇴보(退步)는 바로 빈약한 산림자원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개성 주변의 산자락은 온통 붉고 희언 색이었다. 쓸 만한 나무는 거의 없고, 자연 번식한 잡목마저 간혹 눈에 띄는 정도였다고 했다.
“생각해 보세요. 수로에 물이 가득 찼던 천 년 전의 개경을, 그리고 지금의 개성을요.”
그의 손가락은 멀리, 자신이 봤다는 수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씁쓸해 보이는 입가에선 개성공단 시절의 목격담이 이어졌다. 공단 부근에서 종종 식목작업을 했지만 결과는 오래가지 못했다고 했다. 심어놓은 묘목이 통째로 뽑혀 나갔다. 2~3년생이어서 키가 1미터도 안 되는 묘목이었는데도 그랬다고 했다. 주민들이 땔감용으로 캐간 것이다. 더한 장면도 종종 목격했다고 그는 말했다. 몸통이 잘려나간 나무 등걸까지 큰 해머로 내려져, 뿌리째 뽑아가는 모습이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생명력이 질긴 참나무가 자연 번식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다. A씨의 탄식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한마디로 산림녹화의 악순환(惡循環)이라고 할 수 있죠. 그나마 잘 살고, 감시가 심한 평양 주변이나 녹화가 가능할까요. 난방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그 어떤 녹화사업도 버텨날 수 없을 겁니다.”
 
평양과 개성 간의 오디세이는 세 시간 만에 끝나가고 있었다. 버스는 개성공단을 지나 유엔사가 관할하는 비무장지대(DMZ)로 빨려들어 갔다. 도라산역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안검색대에 짐 가방을 올려놓고, 열흘 간 함께 한 북측 참사관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 참사관의 작별 인사는 이러했다.
“또 만납시다. 잊지 말고 삽시다.”
 
인사를 뒤로 하고 도라산역을 빠져나왔다. 파주시 장단면의 들녘이 눈에 들어왔다. 확실히 푸르고 무성했다. 북녘 산하를 잠시 떠올렸다. 마중 나온 회사 직원들과 북한에서 겪은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승용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여름 볕을 머금어, 풍성한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내 눈은 분명, 그 나무들을 보고 있었지만, 더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무심히 보는 게 다였다. 어느 덧, 내 뇌는 회사 일로 꽉 채워지고 있었다. 운정휴게소 전망대에서 봤던 모습의 잔상(殘像)마저도 사라지고 있었다.
 
*본 작품은 2018년 상록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음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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